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몰입이 마음을 치유하는 순간: 푸드표현예술치료와 Flow 경험

몰입이 마음을 치유하는 순간: 푸드표현예술치료와 Flow 경험

심리상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내담자가 무언가에 집중하며 조용히 몰입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그때는 말이 없어도 치료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몰입(flow)은 마음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심리적 자원이다.

푸드표현예술치료에서 몰입은 매우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음식을 자르고, 형태를 만들고, 색을 조합하고, 작은 조각들을 놓는 과정은
마치 어린 시절의 놀이처럼 사람을 ‘지금 여기’에 머무르게 한다.
이 순간 뇌는 복잡한 사고와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의 감각에만 집중한다.


몰입이 일어날 때,
뇌에서는 스트레스 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 활동이 잠시 조용해지고,
대신 전전두엽의 조절 기능이 강화된다.
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Csikszentmihalyi는 이를
“스스로가 사라지는 듯한 평온한 집중의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바로 그 순간, 심리적 회복이 일어난다.


상담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불안이 심해 손발을 떨던 청소년이,
과일 배열에 집중하느라 어느새 호흡이 고르게 변하는 모습.

생각이 많은 성인이
작은 재료 하나하나를 다듬으며 “아무 생각이 안 나서 좋다”고 말하는 모습.

이것들은 모두 몰입이 만들어낸 심리적 회복의 장면이다.


몰입은 단순한 ‘집중’과는 다르다.
평가받는 집중은 긴장을 만들지만,
푸드 조형에서 일어나는 집중은 부담이 없고 즐겁다.
손이 움직이는 동안 생각의 소음은 줄어들고 자기 안에서 새로운 감정과 기억이 떠오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처리(Emotional Processing)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몰입 경험은 자기효능감을 높인다.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해냈다”는 감각이 생기고,
이 감각은 실제 삶의 문제를 다루는 힘으로 이어진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반복되면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함께 자란다.


음식이라는 매체가 몰입을 더 쉽게 만드는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음식은 잘못해도 괜찮고, 모양이 달라도 자연스럽다.
실패 없는 환경은 몰입의 중요한 조건이다.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 가장 깊이 몰입할 수 있다.

나는 푸드표현예술상담사로서
손이 마음을 이끄는 순간들을 수없이 목격해왔다.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슬픔, 불안, 관계의 어려움이
작은 조각 하나를 붙이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재구성되곤 한다.
몰입은 일시적인 감정 조절을 넘어 자기 회복의 근본적인 기반을 만들어준다.

치유는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몰입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먹거리가 조형이 되고, 조형이 마음의 흐름을 바꾸는 과정—
그곳에 푸드표현예술치료의 깊은 힘이 있다.


📚 참고문헌

  • Csikszentmihalyi, M. (1990). Flow.
  • LeDoux, J. (1996). The Emotional Brain.
  • Malchiodi, C. A. (2012). Art Therapy and Health Care.
  • Porges, S. (2011). The Polyvagal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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