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둥근 날, 꽃을 허락하는 날

정월대보름과 새 학기의 문 앞에서


새해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달력은 이미 여러 장을 넘겼지만
마음은 아직 어딘가 망설임 속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새 학기의 첫날이기도 하고
정월대보름이기도 하다.

둥근 달이 뜨는 날,
사람들은 오곡밥을 지어 먹고
묵은 나물을 꺼내어 한 해의 건강을 빌고
부럼을 깨물며 부스럼 없는 시간을 소망한다.
“내 더위 사가라” 외치던 어린 날의 목소리도
어디선가 따라온다.

겹쳐진 시간 위에
오늘은 유난히 또렷하게 서 있다.

새 학기라는 말은
늘 조금 긴장된 공기를 데려온다.

다시 이름을 불리고,
다시 자리를 찾고,
다시 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마음.

우리는 은근히 비교하고
은근히 조급해진다.

남보다 늦지 않았는지,
나는 충분히 준비되었는지,
올해는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하지만 오늘,
둥근 달을 떠올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달은 서두르지 않는다.
차오를 만큼 차오르고
비워질 만큼 비워지며
그저 자기 모양을 지켜낸다.

나도 분명 꽃인데
나만 그걸 몰랐던 거다
봄이다 이제 너도 꽃을 피워라

― 나태주, 『꽃을 피우자』

어쩌면 우리는
꽃이 되기 위해 애쓴 것이 아니라
이미 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더 준비되면,
더 완전해지면,
더 인정받으면 피겠다고
스스로를 미뤄두었는지도 모른다.

정월대보름의 한 그릇 오곡밥처럼
나의 시간도 여러 결로 이루어져 있다.

설렘, 불안, 기대, 망설임,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작은 꿈들까지.

그 모든 것이 함께 있어도
나는 충분히 한 사람이다.

꽃은
완벽해진 다음 피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며 제 빛을 알아간다.

새해가 시작된 지 두 달.
오늘은 어쩌면
비로소 나를 시작하는 날일지 모른다.

누가 먼저 피는지
누가 더 크게 피는지보다
나는 오늘
한 장의 꽃잎을 조용히 펼치는 쪽을 선택한다.

봄이다.

이제
너도 꽃을 피워라.

그리고 나도,
조금 늦은 듯 보여도
내 자리에서
나의 속도로 피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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