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캐러 갔다가, 관계를 주워 온 날

산에 둘러싸인 밭에서 보낸 번개 하루, 그리고 ‘관계의 온도’를 다시 느낀 기록


딸이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아이들이 그렇게 오래 이어지니, 어느새 엄마들끼리도 가까워졌다. ‘아이들 인연’에서 시작된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게, 가끔은 참 신기하다.

오늘은 그 언니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연락을 했다. “냉이 캐러 갈래?” 말 그대로 번개였다. 장소는 안성. 언니 중 한 명이 그곳에 세컨하우스가 있는데 산에 둘러싸인 동네에 냉이가 있는 밭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몸만 갔다. 가까운데 가서 밥을 사 먹으면 되지, 그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들은 달랐다.

한 언니는 맛있는 고구마를 구워오고 여러 가지 과일까지 준비해 왔고, 또 한 언니는 냉이를 품은 주먹밥, 무짠지 품은 주먹밥, 땅콩과 멸치를 품은 주먹밥과 컵라면까지 챙겨왔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오늘의 번개는 ‘냉이’보다 ‘사람’을 중심에 둔 약속이었다는 것을.

언니들은 말했다. “오늘은 마당에서 광합성 하고 싶어.” 그 말이 참 좋았다. 어쩐지 마음이 먼저 풀리는 문장이었다.

산에 둘러싸인 밭에서, 나는 핑계를 캐고 있었다

짐을 안성 집에 두고 봉지와 장갑, 호미를 챙겨 밭으로 갔다. 정말 산에 둘러싸인 조용한 동네였다. 고추밭에는 냉이가 제법 많았지만, 아직은 조금 어렸다. 물론 큰 냉이도 있기는 했다.

나는 냉이를 캐는 것보다 핑계를 더 많이 찾고 있었다. “냉이가 작다.” “없다.” “호미가 이상하다.” 반면 언니들은 말없이, 꽤 성실하게 냉이를 캐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초대, 그리고 마음의 문

그런데 열심히 냉이를 캐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분이 우리를 불렀다. 정확히는 우리 중 세컨하우스를 가진 언니를 부른 것이었다. 우리는 언니 뒤를 따라 그분 집에 잠시 들렀다.

커피도 내어주시고, 배도 깎아주시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마 동네와 조금 떨어져 사시다 보니 외로웠던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사람을 만나니 반갑고, 말이 길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잠시 함께 지나왔다. 떠날 때는 도라지 한 봉지도 얻어 나왔다.

마당 점심, 그리고 ‘돌봄’의 언어

다시 언니 집으로 돌아와 주먹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수돗가에서 도라지도 씻고, 냉이도 씻어 다듬었다. 그리고 마당에 앉아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떨었다. 정말 말 그대로 광합성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 한 가지를 또 배웠다. 누군가를 챙기는 방식은 ‘큰 이벤트’가 아니라 주먹밥 하나, 과일 한 접시, 따뜻한 컵라면 같은 작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돌봄은 관계를 오래 살린다는 것을.

상담가의 시선: 관계는 ‘함께 있는 시간’으로 회복된다

상담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관계가 멀어진 것 같아요.” “예전처럼 가깝지 않아요.” 하지만 많은 관계는 ‘대단한 해결’이 아니라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웃는 시간으로 조금씩 회복된다.

오늘의 냉이 캐기는, 냉이를 얼마나 캤는지가 핵심이 아니었다. 냉이보다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온 날.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나는 관계의 온도를 다시 확인했다.

봄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이렇게, 갑자기 잡힌 하루 속에서 슬쩍 우리 곁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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