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8일째, 오늘은 강아지풀과 산딸기로 손녀들을 표현하고, 회관 앞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과 관계가 주는 회복의 힘을 다시 느꼈다.
오늘은 회복 18일차다.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요즘은 아침 산책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루틴이 되었다.
회복을 위해 스스로와 약속한 시간이기도 하다.
바람이 시원했던 아침 산책
오늘은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며칠 동안 후덥지근했던 날씨와는 달리 걷기에 딱 좋은 아침이었다.
천천히 길을 걷다 보니 길가에 강아지풀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걸어가니 빨갛게 익은 산딸기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손녀들을 만들어 볼까?'
나는 강아지풀과 산딸기를 조심스럽게 주워 들었다.
그리고 길가에 앉아 세 손녀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강아지풀과 산딸기로 표현한 손녀들
푸놀치는 내가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도 늘 하던 나의 일상이었다.
회복을 위해 내려온 지금도 몸이 허락하는 날에는 자연 속에서 작은 작품 하나씩 만들어 보고 있다.
무엇인가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잠시라도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아마 이것도 나만의 회복 방법인지 모르겠다.
비가 오락가락한 하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왔다가, 잠시 그쳤다가, 또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애매한 날이었다.
밖으로 나가기도 어렵고, 텃밭 일을 하기에도 어려운 날.
그래서 방 창가에 앉아 창밖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꽃들, 빗방울이 맺힌 나뭇잎, 젖은 흙 냄새.
그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심심해서 죽겠다는 아주머니의 한마디
오후가 되자 잠시 비가 그쳤다.
밖으로 나가 보니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회관 앞 의자에 혼자 앉아 계셨다.
나를 보시더니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심심해서 죽겠다."
"엄마 나오라고 해."
나는 웃으며 집으로 들어와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 아주머니가 나오시래요."
엄마는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 하시며 천천히 밖으로 나가셨다.
회관 앞에 계시던 아주머니는 엄마를 보자마자 반갑게 말씀하셨다.
"왜 이제 나왔어."
그 모습이 참 정겨웠다.
썩어먹네, 그런데 웃으니까 좋잖아
나는 인사만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으셨다.
"너라도 있으니까 좋은데 왜 들어가."
어쩔 수 없이 나도 의자에 앉아 아주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특유의 말투가 있으셨다.
엄마와는 또 다른 성격이었다.
사투리를 섞어 말씀하시는데 가끔은 욕처럼 들리는 표현도 자연스럽게 쓰셨다.
내가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웃으시며 한마디 하셨다.
"썩어먹네."
순간 너무 웃음이 났다.
내가 웃자 아주머니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라도 웃으니까 좋잖아."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같이 웃었다.
회관 앞 작은 사랑방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들어가려면 다른 분을 한 분 모셔와야겠다.'
그래서 앞집에 계시는 '8학년 5반' 아주머니 댁으로 갔다.
"아주머니, 뭐 하세요?"
"밖에 좀 나오세요."
조금 있으니 아주머니도 나오셨다.
그리고 조금 더 있으니 또 다른 아주머니 한 분도 나오셨다.
순식간에 회관 앞은 작은 사랑방이 되었다.
그제야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오후 루틴과 드라마 시간
엄마는 평소 오후 4시쯤 회관 앞으로 나가시면 저녁 7시쯤 집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방송 3사의 드라마를 차례대로 보시는 것이 엄마의 또 하나의 일상이다.
물론 방송사마다 시작 시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엄마에게 저녁 드라마 시간은 꽤 중요한 루틴이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계속 내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가셨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셨다.
아마 늦게 나가신 만큼 못다 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
그리고 한 가지를 다시 깨달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사실 엄마도 혼자 생활하신다.
오늘 먼저 회관에 나와 계셨던 아주머니도 혼자 사신다.
앞집 '8학년 5반' 아주머니도 혼자 생활하신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시 함께 웃고,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엄마가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하고 이야기해야 안 아프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약도 필요하고, 휴식도 필요하지만,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회복 18일차, 오늘 내가 배운 것
오늘은 회복 18일차.
강아지풀과 산딸기로 손녀들을 표현하며 웃었고, 회관 앞에서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를 들었고, 엄마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누구와 이야기할 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까?
-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나에게 필요한 연결은 무엇일까?
- 오늘 나에게 웃음을 준 사람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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