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20일차, 쉬러 내려왔는데 엄마의 삶을 배우고 있었다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20일째, 몸을 쉬게 하려고 시작한 시간이 어느새 엄마의 오랜 삶과 아픔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회복 20일차다.

벌써 2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 엄마 집으로 내려와 쉬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걱정을 했다.

"거기는 인터넷도 잘 안 되잖아."
"커피 한 잔 마시려 해도 차로 10분 이상 나가야 하는데 괜찮겠어?"
"차도 안 가져간다면서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

대부분은 내가 시골에서 차 없이 지내는 것을 걱정했다.

물론 나의 결정을 응원해 준 사람들도 있었다.

"잘 생각했어.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엄마와 푹 쉬어."

그 말도 맞았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는 또 다른 걱정이 남아 있었다.


엄마 집으로 내려가는 것이 정말 쉼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더 걱정하실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네가 아픈 모습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지 않을까?"
"괜히 엄마에게 걱정만 더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또 어떤 사람은 엄마도 연세가 많고 몸이 불편하시니 내가 쉬기는커녕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엄마도 여기저기 아프신데 네가 그곳에서 제대로 쉴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정말 내가 쉬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번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살아보지 않은 시간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와의 생활이 벌써 20일이 되었다.


엄마에게 걱정을 드리지 않을까 했지만

돌이켜보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근심을 한가득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에 내려와 지내면서 심한 두통으로 힘들었던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몸은 조금씩 쉬고 있었고,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고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엄마가 아파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일이었다.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삭신이 아픈 것 같아

오늘도 점심을 먹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삭신이 아픈 것 같아."

엄마는 몇몇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름을 말씀하시며 누가 어디가 아프고, 누가 자신보다 잘 움직이는지를 이야기하셨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옛날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는 결혼할 때 솜이불을 직접 만들어 혼수로 보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밤늦게까지 바느질하시던 엄마의 모습과 집 안에 오래도록 이어지던 재봉틀 소리.

엄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이불 안 만들어준 사람이 없어."
"초상이 나면 상복도 내가 다 만들어 줬어."


그때는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잖아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조금만 움직여도 삭신이 아프고 목이 빠질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거잖아."
"엄마, 그때 돈을 제대로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 해줬어?"
"지금 누가 와서 고맙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만 이렇게 고생이잖아."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창밖 먼산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서로 돕는 일이 당연했고,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선택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엄마에게 바느질은 기술이 아니라 삶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늘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 동네 사람들의 솜이불을 만들고
  • 초상이 나면 상복을 만들고
  • 가족의 옷을 손질하고
  • 낡은 옷도 다시 고쳐 입으셨다

지금도 바지 길이가 맞지 않으면 줄이고, 허리가 크면 다시 뜯어서 고쳐 입으신다.

내가 새로 사 입으라고 말해도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이게 더 편해."

아마 엄마에게 바느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생을 살아온 방식이었고, 몸이 기억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만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엄마의 몸에는 지나온 세월이 남아 있었다

오늘도 나는 거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엄마의 꽃밭과 먼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방문 너머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이고, 삭신이야."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엄마 몸의 통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닐 것이다.

가족을 돌보고, 농사일을 하고, 이웃을 위해 수없이 손을 움직이며 살아온 시간이 몸에 남긴 흔적일지도 모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나는 엄마가 힘들게 살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모든 시간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삶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오후 3시가 되면 엄마는 조금씩 살아난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있다.

오후 3시쯤만 되면 엄마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신다.

회관에 나갈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누워 계시던 엄마가 천천히 일어나 머리를 빗으신다.

그리고 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신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엄마는 정말 외향적인 사람일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일까.

아니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 사람이 그리운 것일까.

정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것 같다.

집 안에서 "아이고, 삭신이야." 하시던 엄마가 회관에 다녀오시면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안부를 나누고,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또 하나의 약이 되는 것 같다.

오늘도 엄마는 저녁 7시가 넘으면 집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엄마와 20일 가까이 함께 지내며 조금은 알 것 같다.

엄마가 지금 이렇게 아파하시는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힘든 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일까.

나 역시 아이들을 위해 살아오며 내 몸과 마음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이들도 언젠가 나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엄마도 참 많이 애쓰며 살았구나."

부모의 삶은 가까이 있을 때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복 20일차, 쉬는 동안 엄마의 삶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몸을 회복하기 위해 엄마 집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20일을 함께 보내고 나니 나는 몸만 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살아온 삶을 듣고, 엄마의 통증을 바라보고, 내가 모르고 지냈던 시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회복 20일차.

쉬러 내려온 줄 알았는데, 나는 쉬는 동안 엄마의 삶을 배우고 있었다.

어쩌면 회복이란 몸이 나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그 시간을 마음으로 품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부모님의 지나온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부모님의 몸에 남아 있는 세월을 바라본 적이 있을까?
  •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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