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28일차, 동생이 차려준 아침과 부여 궁남지 연꽃 나들이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28일차. 오늘은 처음으로 동생 집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동생이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제부와 푸놀치를 한 뒤, 작은 텃밭에서 고추와 토마토, 가지를 수확했습니다. 완주로 돌아오는 길에는 부여 궁남지에 들러 계절의 끝자락에 남아 있는 연꽃과 다양한 색의 수련을 만났습니다.


비와 바람이 부는 아침에도 습관처럼 눈이 떠졌다

오늘은 특별한 소음이 들린 것도 아닌데 평소에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졌습니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도 제법 세차게 불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도 되는 날이었지만 몸은 이미 익숙한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습관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평일에는 알람이 울려도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이불 속에서 버티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늦잠을 자도 되는 주말이 되면 알람이 없어도 평소 시간에 눈이 떠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꼭 그런 날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동생 집에서 맞이한 아침

엄마와 내가 동생 집에서 함께 잠을 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동생도 언니와 엄마가 자기 집에서 처음 자는 것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자는 방으로 와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잘 잤어?”

엄마는 잘 잤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동생은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준비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우리를 위해 아침밥을 차려주었습니다. 블루베리와 딸기에 우유를 넣어 주스도 만들어주었습니다.

동생이 부엌에서 엄마와 나의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낯설면서도 따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동생이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동생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 장면은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장면이 오늘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이 어느 날 조용히 찾아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기억으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동생이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제부와 함께한 푸놀치

동생이 아침밥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제부와 함께 푸놀치를 했습니다.

갑자기 무엇인가를 표현해보자고 하면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부는 싫다고 하지 않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해주었습니다.

낯선 활동이었을 텐데도 기꺼이 참여해준 제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푸놀치는 작품을 잘 만드는 활동이 아닙니다. 정해진 답을 따라가거나 결과물을 비교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음식과 자연에서 만난 재료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푸놀치는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재료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단지 새로운 호칭을 얻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아직 낯선 모습을 천천히 알아가고, 상대가 좋아하는 일에 한 번쯤 기꺼이 함께해주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부 사무실의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하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제부의 사무실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사무실 근처에 작은 텃밭도 있다고 해서 우리 모두 함께 가보았습니다.

텃밭에는 고추와 토마토, 가지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자주 관리하지 못해서인지 가지와 토마토에는 상처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모양이 반듯하거나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고추도 따고 토마토와 가지도 수확해 가지고 왔습니다.

마트에 진열된 채소는 대부분 모양이 반듯하고 깨끗합니다. 하지만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는 비와 바람, 강한 햇볕과 벌레를 견디며 저마다 다른 흔적을 남깁니다.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채소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생긴 흔적과 상처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래 가치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완주로 돌아가는 길에 부여 궁남지를 선택하다

제부의 사무실을 둘러본 뒤 다시 완주로 내려오는 길에 연꽃을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주 덕진공원에 갈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여 궁남지가 더 넓을 것 같아 목적지를 부여로 정했습니다.

실제로 도착해보니 궁남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연못과 산책길이 넓게 이어져 있었고 곳곳에서 연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연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는 시기가 조금 지났는지 이미 진 꽃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모든 연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연꽃을 찾아 바라보고 천천히 주변을 걷다 보니 아쉬움보다 반가움이 더 커졌습니다.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아름다움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활짝 피어난 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꽃잎을 하나씩 내려놓는 모습에도 그 계절을 살아낸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궁남지에서 처음 알게 된 수련의 다양한 색과 모양

궁남지를 조금 더 걷다 보니 연꽃뿐 아니라 수련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수련이라고 하면 분홍색과 흰색, 빨간색 정도만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난 수련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색을 품고 있었습니다. 꽃잎의 형태와 펼쳐진 모양도 저마다 달랐습니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았습니다.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수련이 이렇게 많은 색과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연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늘 더 많은 모습을 품고 있습니다. 자주 보았다고 해서 제대로 본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바라볼 때 전에 보이지 않던 색과 모양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요즘 회복을 위해 걸음을 늦추고 자연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 때 놓쳤던 것들을 하나씩 새롭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한 귀갓길

궁남지를 둘러본 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다시 완주로 출발했습니다.

차량이 많이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지역을 옮길 때마다 날씨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빗줄기가 굵어졌다가 조금 지나면 멈췄고, 다른 지역에 들어서면 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같은 날 같은 길을 달리고 있는데도 하늘은 지역마다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시간에는 웃음이 나고, 또 어떤 순간에는 몸이 불편합니다. 즐거웠다가도 피곤해지고, 걱정하다가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마음이 환해집니다.

하루는 한 가지 감정으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듯 우리의 마음도 여러 감정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살아냅니다.


엄마는 안마의자에서 쉬고 나는 뚱딴지꽃을 심었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피곤하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안마의자에 앉아 피로를 풀었습니다.

나는 제부 사무실 근처에서 캐온 뚱딴지꽃을 엄마의 꽃밭에 심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자라던 꽃이 이제 엄마의 꽃밭 한쪽에 새로운 자리를 얻었습니다.

잘 뿌리를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흙과 환경에 천천히 적응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어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도 지금 뚱딴지꽃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술 전과는 달라진 몸과 일상에 적응하며 새로운 생활의 리듬 속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중입니다.

조급하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기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 움직이고 쉬어가며 살아야 합니다.


오전 내내 이어진 두통이 오후에는 사라졌다

오늘 오전에는 두통이 계속되었습니다.

집 안에 있다가 차를 타고 움직여서 그런 것인지, 전날의 피로가 남아 있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동생 집에서 제부와 푸놀치를 할 때도, 사무실의 텃밭과 부여 궁남지를 둘러볼 때도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의 일정을 모두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한 통증은 아니었습니다. 몸의 상태를 살피면서 가능한 한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오후가 되면서 두통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지금은 통증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몸이 불편했다가 다시 편안해지는 변화를 경험하면 아무렇지 않게 지냈던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알게 됩니다.

통증이 없는 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몸이 잠시 평온을 되찾은 소중한 시간입니다.


회복 28일차,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하루가 찾아왔다

오늘은 동생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제부와 푸놀치를 했습니다.

제부의 사무실과 작은 텃밭을 둘러보며 고추와 토마토, 가지도 수확했습니다. 부여 궁남지에서는 계절의 끝자락에 남은 연꽃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색의 수련을 만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는 안마의자에서 피로를 풀었고, 나는 새로 가져온 뚱딴지꽃을 엄마의 꽃밭에 심었습니다.

오전에는 두통이 있어 불편했지만 오후가 되면서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오늘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동생이 우리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던 모습입니다.

나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결혼하고, 동생의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동생이 차려준 아침을 먹는 날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삶은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한 순간이 어느 날 조용히 찾아오기도 합니다.

회복 28일차인 오늘은 몸의 통증보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이 찾아왔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따뜻했습니다.


오늘의 한 줄

삶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이 어느 날 조용히 찾아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기억으로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함께 생각해보면 좋은 질문

  •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느 날 현실이 된 따뜻한 순간이 있나요?
  • 가족이 나를 위해 준비해준 평범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 최근 천천히 바라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자연의 모습이 있나요?
  • 내 몸이 쉬어야 한다고 알려주는 첫 번째 신호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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