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의 시골집에 머문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습니다. 회복 30일차 아침, 날파리를 쫓으며 걸었던 산책길에서 병든 고추와 이름 모를 꽃을 만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의 말을 통해 몸과 마음, 습관과 관계를 제때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회복 30일차, 어느덧 한 달이 되었습니다
회복 30일차입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흘렀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 오늘까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몸이 불편했던 날도 있었고 마음이 흔들렸던 날도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쉬었던 날도 있었지만, 그 모든 날을 지나 나는 오늘도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복 30일차는 한 달이 지나갔다는 아쉬움보다 내가 한 달을 잘 살아냈다는 감사함을 먼저 생각해보는 날이었습니다.
산책을 갈까, 오늘도 쉬어야 할까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에는 안개인지 먹구름인지 알 수 없는 회색빛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가도 잠시 후에는 조금 밝아지는 듯했습니다.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했습니다.
산책을 가야 할까.
아니면 오늘도 그냥 쉬어야 할까.
회복 중에는 움직이는 것과 쉬는 것 사이에서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몸을 위해 움직여야 할 것 같다가도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쉬고 있으면 너무 오래 누워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됩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단 준비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돌아오고 몸이 힘들면 조금만 걷기로 하며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날파리 때문에 나부터 의심한 아침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날파리들이 내 얼굴 주변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귀 옆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도 신경 쓰였고,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쫓아도 잠시 멀어졌다가 금세 다시 얼굴 가까이 달려들었습니다.
나는 날파리를 쫓으며 별생각을 다 했습니다.
어젯밤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렸나?
내가 더러운가?
혹시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는 걸까?
산책을 시작하자마자 날파리 때문에 괜한 자기 점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 손으로 날파리를 쫓아가며 길을 걸었는데, 이상하게도 산책을 마칠 때까지 계속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네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비가 오려고 그러는 거야”
두 시간 가까이 걸은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계란탕 냄새가 먼저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평소보다 늦게 돌아와 배가 고프셨던 모양입니다.
“배고프다. 빨리 먹자.”
서둘러 손을 씻고 밥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엄마와 마주 앉아 따뜻한 계란탕을 먹으며 산책길의 날파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 내가 더러운가 봐.
날파리가 산책이 끝날 때까지 나를 계속 쫓아왔어.”
그러자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더러워서 그런 게 아니야.
비가 오려고 하면 날파리가 눈을 파먹을 것처럼 그렇게 왔다 갔다 하더라.”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 조금 우스워졌습니다.
나는 날파리의 행동을 보며 나 자신부터 의심했는데, 엄마는 날씨의 변화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자연 가까이에서 오래 살아온 엄마에게는 날파리의 움직임도 비가 오려는 신호 중 하나였던 모양입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 나는 나를 탓했고, 엄마는 자연의 변화를 읽고 있었습니다.
모든 불편한 일이 꼭 나의 잘못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저 날씨가 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병든 고추를 보며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산책길에 앞집 아주머니가 벌써 고추밭에 나와 약을 주고 계셨습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상태가 좋지 않은 고추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부 고추는 병이 들어 스스로 떨어지고 있었고, 줄기에 매달린 채 썩어가는 고추도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푸른 잎이 무성해 괜찮아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미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사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름시름 아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피로였는데 쉬지 않고 지내다 보면 몸 전체가 무거워집니다. 처음에는 작은 서운함이었는데 마음속에 오래 쌓아두면 관계 전체가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고추에게 필요한 약을 주듯 사람에게도 그때그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충분한 잠이 필요하고,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쉼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회복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천천히 걸으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꽃이 보였습니다
산책을 계속하다 보니 길가에는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식물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꽃과 풀의 이름을 외울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지금의 삶과 내 주변에 마음을 둘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도 산책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지나간 일을 걱정하며 때로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걷습니다. 그러는 동안 길가의 풀과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습니다. 크지 않은 꽃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모양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박주가리라는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같은 시골길을 걷는 것도, 이렇게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처음이라 그 꽃이 더 새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지만 하루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제는 없던 것 같은 꽃이 피고, 지난주에 작았던 열매가 어느새 커져 있습니다.
나의 회복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몸과 마음에는 조금씩 다른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오래 바라보지 않습니다
길가의 이름 모를 식물들을 바라보다가 사람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내 실수를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지금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이런 생각 때문에 하고 싶은 행동을 망설이거나 지나간 일을 오래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길가에 어떤 식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생각보다 나를 오래 바라보거나 세세하게 기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쁩니다. 내가 나의 걱정에 빠져 주변의 식물을 보지 못하듯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와 생각 속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어쩌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세상의 시선보다 훨씬 엄격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씨앗이 퍼지기 전에 풀을 뽑는 엄마
아침을 먹고 조금 지나 엄마가 다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무엇을 하러 가시는지 바라보니 엄마는 팔토시를 끼고 장화를 신고, 밭에서 앉아 일할 때 사용하는 작은 엉덩이 의자까지 챙기셨습니다.
그야말로 다시 완전무장을 하신 것입니다.
엄마가 향한 곳은 꽃밭이었습니다. 비가 내려 꽃만 잘 자란 것이 아니라 풀도 함께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풀이 씨앗을 퍼뜨리기 전에 뽑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풀이 더 자라서 씨를 퍼뜨리면 안 돼.
씨가 퍼지면 감당을 못 해.”
지금은 몇 포기만 뽑으면 되지만, 씨가 퍼지고 나면 다음에는 몇 배나 많은 풀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우리의 습관을 떠올렸습니다.
오늘 하루만 미루자고 했던 일이 계속 미뤄지고, 잠들기 전 잠깐만 보려던 휴대전화가 매일 수면을 방해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말하지 않고 참는 일이 반복되면 관계 속에서 굳어진 행동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좋지 않은 습관도 풀씨와 같아서 단단히 자리 잡은 뒤에는 바꾸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 커지기 전에, 더 깊어지기 전에 작은 행동부터 수정하는 것이 삶을 가꾸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살아온 삶을 존중한다는 것
엄마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자신만의 생활 방식과 삶의 철학을 만들어오셨습니다.
풀을 언제 뽑아야 하는지, 마늘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호박은 언제 따야 하는지 엄마는 경험으로 알고 계십니다.
때로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가 살아온 삶은 내가 살아본 삶이 아닙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서 엄마는 가족을 돌보고 농사와 집안일을 감당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엄마의 부지런함과 고집에는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엄마의 모든 방식을 따라가는 일이 아닙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경험을 존중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관계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요즘에는 엄마를 마을회관으로 부르러 오시던 아주머니가 잘 오지 않으십니다.
얼마 전 ‘8학년 5반’인 아주머니와 다른 아주머니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한 분이 마을회관에 나오지 않으시면서 어르신들이 함께 모이는 일도 전보다 뜸해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도 덜 나가게 되고, 그렇게 함께 모이던 생활의 리듬도 달라집니다.
오늘 엄마는 마을회관에 한번 나가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니 누군가 회관에 나와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관계가 쉬워질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팔십이 넘은 어르신도 관계 속에서는 서운하고 상처받습니다.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자존심 때문에 망설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평생 관계를 배우고,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회복 30일차, 제때 돌보는 것이 회복이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하루는 아니었습니다.
날파리, 병든 고추, 길가의 꽃, 엄마의 꽃밭과 마을회관 이야기. 서로 다른 장면 같지만 한 가지 의미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습관도, 관계도 제때 살피고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추가 병들기 전에 살펴야 하고, 풀이 씨앗을 퍼뜨리기 전에 뽑아야 합니다. 몸이 보내는 피로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아야 하고, 마음의 서운함이 깊어지기 전에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관계가 완전히 멀어지기 전에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도 필요합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의 내 몸을 살피고, 지금 필요한 쉼을 주고, 내 앞에 있는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갔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그러나 지난 30일 동안 나는 내 몸의 소리를 전보다 더 자주 들었고, 평범한 일상에서 많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회복 30일차인 오늘, 지난 한 달을 완벽하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내 방식대로 잘 살아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오늘의 한 줄
회복은 몸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이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모든 불편한 일을 나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는 무엇인가요?
- 씨앗이 퍼지기 전에 바로잡고 싶은 습관이 있나요?
- 바쁘게 지나치느라 미처 바라보지 못한 내 주변의 풍경은 무엇인가요?
- 관계가 더 멀어지기 전에 먼저 안부를 물어야 할 사람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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