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71일차|엄마는 혼자 밭으로 나갔고, 나는 다시 장화를 신었다

어제부터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어요. 밤에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는데 아침이 되니 공기만 찌뿌둥하고 후덥지근했어요.

엄마는 제게 밭일을 도와달라고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다른 집들은 김장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하셨어요.

엄마가 혼자 밭으로 나가는데 저만 방에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다시 장화를 신었습니다.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71일차
김장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준비하는 엄마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딸의 이야기예요.

비가 오락가락하는 아침

어제부터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어요. 어젯밤에는 비가 줄기차게 내렸어요.

그런데 아침이 되니 비는 잠시 멈추고 날씨만 찌뿌둥하고 후덥지근했어요.

엄마는 제게 무슨 일을 하자고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혼잣말처럼 이야기하셨어요.

“다른 집들은 이제 김장 배추 심을 준비를 한다더라.
밭에 비료와 거름을 주고 땅도 뒤집어 놓아야 하는데….”

예전에는 남동생들이 알아서 해주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모두 각자의 일로 바쁘고, 가까이 있는 동생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이곳까지 늘 신경 쓰기는 쉽지 않아요.

엄마에게 든든한 아들이 있어요

그래도 어제 동생은 엄마와 누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복숭아 한 상자를 사 들고 왔어요.

이곳에 새로 생긴 중국집에도 함께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짬뽕과 탕수육을 사주었어요.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찾아오는 동생이 고마웠어요. 엄마도 그런 아들이 있어 든든할 거예요.

자식마다 부모를 돌보는 방법은 다른 것 같아요. 누군가는 밭일을 돕고,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며 마음을 표현해요.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

아침을 드시면서 엄마는 오늘 비료를 주어야겠다고 하셨어요. 혼자 하겠다고 하셨지만 엄마가 밭에서 일하는데 저만 방에 있을 수는 없었어요.

창고에서 장화를 꺼내 신고 밭으로 나갔어요.

저는 거름 포대를 엄마가 놓으라는 곳으로 옮기고, 비료를 덜어다 드렸어요. 소시랑으로 땅을 파는 일도 했어요.

예전에도 종종 도와드렸던 일이라 엄마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다만 약간의 어지러움이 있어 몸 상태를 살피며 일의 속도를 조절했어요.

강한 햇볕에 잠시 철수했어요

비가 올 것 같았던 하늘에서는 어느새 해가 쨍쨍하게 떠올랐어요.

햇볕이 너무 강해지자 엄마도 안 되겠다며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셨어요.

저도 더 일하기에는 햇볕이 너무 강하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일단 밭일을 멈추고 집으로 철수했어요.

땀을 많이 흘려 몸이 조금 힘들었지만 씻고 충분히 쉬고 나니 괜찮아졌어요.

예전 같으면 시작한 일을 모두 끝내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몸의 신호를 살피고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도 회복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다시 밭에 나가 있었어요

오후가 되자 다시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도 제법 세차게 불었어요.

엄마는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가셨어요. 그사이 저는 줌으로 잠깐 회의를 했어요.

회의 도중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회의가 끝날 때까지 방으로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이상해서 텃밭에 나가보니 엄마는 아침에 다 파지 못한 밭을 작은 괭이로 파고 계셨어요.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엄마의 고집이에요.

나는 다시 장화를 신었어요

저는 다시 장화를 신고 소시랑을 들었어요.

엄마는 왜 나왔느냐고 잔소리하면서도 하던 일을 묵묵히 계속하셨어요.

저는 소시랑으로 남은 땅을 파고, 큰 흙덩어리는 소시랑 등으로 두드려 잘게 깨뜨렸어요.

제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뒤에도 엄마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흙덩어리를 하나하나 더 고르고 깨뜨린 뒤에야 들어오셨어요.

엄마는 딸이 힘들까 봐 혼자 밭으로 나가고,
딸은 엄마가 힘들까 봐 다시 장화를 신었어요.

다음 주에 떠날 딸을 생각하는 엄마

엄마는 제가 다음 주에 용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네가 가면 내가 하려고 했는데, 그때 하면 늦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했다.”

그 말씀 속에는 김장 배추를 심을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과 딸에게 힘든 일을 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이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어요.

나이가 들어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고, 밭일은 해야 할 때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자식에게 일을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 두면 또 끝까지 해내고 마는 엄마예요.

잔소리 속에 들어 있는 서로의 마음

회복 71일차

오늘은 몸 상태를 살피며 엄마와 함께 김장 배추밭을 준비했어요.

조금 어지러울 때는 속도를 늦추었고, 햇볕이 강해졌을 때는 일을 멈추고 쉬었어요.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엄마와 함께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마음은 남았어요.

엄마는 딸이 힘들까 봐 혼자 하려고 하고, 딸은 엄마가 힘들까 봐 다시 장화를 신어요.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 자꾸 잔소리가 오가요.

하지만 그 잔소리 속에도 서로를 향한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사랑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의 한 줄

엄마는 딸이 힘들까 봐 혼자 밭으로 나가고,
딸은 엄마가 힘들까 봐 다시 장화를 신었다.


이 글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한 글이에요. 회복 과정과 활동량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몸 상태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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