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76일차|여름에 내려와 가을에 돌아갑니다

회복 76일차.

한여름이 시작되던 6월에 엄마 곁으로 내려왔는데 어느새 계절은 가을의 문턱인 9월에 와 있어요.

이제 엄마와 함께 보낸 한 계절을 뒤로하고 제가 생활하던 용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그렇다고 회복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에요. 장소를 옮겨 회복의 다음 단계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76일차
여름에 엄마 곁으로 내려와 몸과 마음을 돌보았고, 이제 가을과 함께 저의 삶으로 천천히 돌아갑니다.

긴 여정을 마무리할 시간

이곳에서 보낸 긴 시간을 이제 조금씩 마무리하려고 해요.

내일은 오빠의 61번째 생일이에요. 온 가족이 모여 생일을 축하한 뒤 일요일에는 제가 생활하던 용인으로 돌아갑니다.

마냥 이곳에 머물 수는 없어요. 이미 일정을 확정해놓은 학교도 있어 일요일에는 꼭 올라가야 해요.

그렇다고 용인에 돌아가자마자 예전처럼 바쁘게 일할 생각은 아니에요.

몸 상태를 살피며 할 수 있는 일부터 천천히 시작하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고 해요.

여름에 내려와 가을에 돌아가는 길

76일이라는 숫자가 오늘따라 크게 다가와요.

한여름이 시작되던 6월에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어느새 계절은 가을의 문턱인 9월에 와 있어요.

여름 한 계절을 오롯이 엄마 곁에서 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셈이에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몸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몸의 작은 변화에도 불안했고,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만 회복된 것은 아니었어요.

엄마와 밥을 먹고, 새벽길을 걷고, 자전거를 타고 텃밭의 변화를 바라보았어요.

때로는 엄마와 함께 밭일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쉬었어요.

그 평범한 시간 속에서 몸도 조금씩 회복되었고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어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떤 속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몸을 회복하기 위해 내려왔지만,
한 계절을 보내며 마음까지 돌보게 되었어요.

벌써부터 시작된 엄마의 서운함

긴 시간 함께 있었던 딸이 곧 돌아간다는 사실이 엄마에게는 벌써부터 서운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괜히 짜증을 내기도 하고, 드신 것이 체해 속이 불편해지기도 해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오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몸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외향적인 엄마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돌아가면 집 안은 다시 조용해지고, 일상의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해요.

그 생각을 하면 저도 마음이 아파요. 제가 있어도 적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제가 떠난 뒤 엄마는 얼마나 허전하고 외로울까요.

그렇다고 제가 계속 이곳에 머물 수만은 없는 현실이 아쉽고 안타까워요.

저에게도 해야 할 일이 있고 돌아가야 할 생활이 있으니까요.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과 나의 삶 사이에서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과 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져요.

부모를 걱정한다고 해서 자녀의 삶을 모두 내려놓을 수는 없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곁에 머무는 것만이 돌봄은 아닐 거예요. 자주 전화하고 안부를 살피며,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방법을 찾는 것도 엄마 곁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가까이에 남동생이 있어 다행이에요

남동생은 누나가 올라가기 전에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감기 기운이 있고 엄마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멀리 나가지는 못했어요.

가까운 곳에 있는 엄마의 단골 중국집에 가서 짬뽕과 탕수육을 먹고 돌아왔어요.

거창한 외식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마음이 고마웠어요. 엄마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자상한 남동생이 엄마 가까이에 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생마저 가까이에 없었다면 엄마는 지금보다 훨씬 외롭고 힘드셨을 거예요.

제가 곁을 떠나더라도 필요할 때 찾아와주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금 놓이게 해요.

“엄마를 잘 부탁드립니다”

방문간호사와 방문목욕을 오시는 분들에게도 엄마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오랫동안 곁에 있다가 갑자기 사라지면 엄마가 한동안 많이 허전하고 힘들어하실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어요.

제가 없는 자리를 누군가가 완전히 채워줄 수는 없겠지만, 정해진 날 찾아와 안부를 묻고 엄마의 몸 상태를 살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가족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어요.

가족의 관심과 가까운 이웃, 돌봄을 제공하는 분들의 손길이 함께 이어져야 엄마의 일상도 조금 더 안전하고 덜 외로울 수 있을 거예요.

회복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달라질 뿐

이번에 용인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제 회복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에요.

시골에서의 76일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제가 살던 곳에서 회복의 다음 단계를 시작하는 것이에요.

예전의 생활로 단번에 돌아가려 하기보다 지금의 몸에 맞는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일을 시작하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피곤하면 쉬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지나치지 않으려고 해요.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회복일지도 모르겠어요.

엄마 곁에서 보낸 한 계절

회복 76일차

한여름에 내려와 가을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제 몸을 회복하기 위해 내려왔지만, 돌이켜보면 엄마와 함께 보낸 한 계절을 선물받은 것 같아요.

엄마와 부딪히기도 하고 서로에게 잔소리도 했어요. 함께 웃고 밥을 먹고, 텃밭의 계절을 바라보며 평범한 하루를 나누었어요.

이제 그 일상을 뒤로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해요.

엄마를 두고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는 않지만, 떠난다고 해서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자주 전화하고 안부를 살피며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엄마 곁을 지켜야겠어요.

76일의 시골생활은 끝나가지만 회복은 계속됩니다.

이제 저는 엄마 곁에서 얻은 힘을 품고 제 삶을 향해 다시 천천히 걸어가려고 해요.

오늘의 한 줄

한여름에 엄마 곁으로 내려와 몸과 마음을 돌보았고,
이제 가을과 함께 나의 삶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이 글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한 글이에요. 회복 속도와 일상 복귀 시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자신의 몸 상태와 의료진의 안내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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