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2일차, 엄마 텃밭 출근 2일차

어제보다 조금 더 움직였고, 오늘은 들깨 모종을 심으며 회복을 배웠다.

뇌동맥류 수술 후 쉬기로 마음먹고 엄마가 계신 곳으로 내려온 지 이틀째다. 오늘은 회복 2일차이자, 엄마 텃밭 출근 2일차다.

어제는 일찍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가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는데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아직 내 몸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다. 잠을 잤다고 바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쉬겠다고 마음먹었다고 금세 몸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아침부터 들깨 모종을 심으러 나갔다

누워 있는데 어제 저녁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일은 들깨 모종 뽑아서 심어야겠다."

엄마 성격을 알기에 해가 뜨기 전에 일을 마치려고 하실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조금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동네 다른 분의 밭으로 가보니 역시나 엄마는 벌써 필요한 들깨 모종을 다 뽑아 놓고 우리 집으로 향하려 하고 계셨다.

얼른 모종을 받아 들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텃밭으로 갔다.

어제는 풀을 뽑았고, 오늘은 들깨를 심는 날이었다.


완전무장인 줄 알았는데 신발이 아니었다

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덥다는 생각보다 조금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 말대로 긴바지를 입고, 잠바도 입고, 모자도 썼다.

나름대로 완전무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아니었다.

신발이 문제였다.

엄마는 장화를 신고 계셨고, 나는 밭일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역시 밭일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농사는 대충 몸만 나가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역할은 들깨 모종 배달 담당이었다

오늘 내 역할은 들깨 모종을 세 개씩 나누어 심을 자리에 놓아두는 일이었다.

나는 모종을 3개씩 나누어 텃밭 곳곳에 배달했다.

엄마는 내가 나누어 놓은 모종을 하나씩 심기 시작하셨다.

모종을 모두 나누어 놓고 나니 나도 심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도 들깨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말씀하셨다.

"깻모 머리를 맞춰서 심어야 해."
"너무 머리가 올라오게 심으면 안 돼."

그때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사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심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엄마가 내가 심어 놓은 들깨를 다시 뽑아서 심고 계셨다.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하고,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엄마의 말은 나중을 위한 말이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들깨는 생명력이 강해서 그렇게 심어도 살기는 살아."
"그런데 키만 너무 커."
"그러면 들깨가 별로 안 열린다."
"비 오고 바람 불면 잘 쓰러진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엄마의 말은 지금 당장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나중을 위한 말이었다.

들깨가 살아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자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냥 뿌리만 내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게 심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회복도 들깨처럼 심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들깨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 회복도 그런 것 같다.

나는 수술만 끝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빨리 예전처럼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 후에도 계속 움직였다.

그런데 엄마가 들깨를 다시 심으며 알려준 것처럼 회복도 급하게 하면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장 괜찮아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너무 빨리 일어나려고 하면 나중에 쉽게 쓰러질 수도 있다.

들깨도 머리를 맞춰 심어야 하듯, 내 몸도 회복의 자리를 다시 맞춰야 하는 것 같다.


80대 엄마는 들깨를 심고, 50대 딸은 회복을 배운다

80대 후반의 엄마는 여전히 흙에게 배우고 계신다.

그리고 50대 후반의 딸은 여전히 엄마에게 배우고 있다.

아직도 어지럼이 있고 두통도 있다.

몸은 여전히 천천히 움직인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이 웃었다.

그리고 어제보다 조금 더 오래 텃밭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한 하루였던 것 같다.

회복도 들깨가 자라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들깨도 시간을 들여 자라고, 나도 시간을 들여 회복하면 되니까.

오늘은 회복 2일차.
그리고 엄마 텃밭 출근 2일차였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지금 빨리 괜찮아지려고 나를 재촉하고 있지는 않을까?
  • 당장 살아내는 것과 제대로 회복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 내 몸이 쓰러지지 않도록 오늘 내가 맞춰야 할 자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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