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2일째, 오늘은 엄마의 꽃밭과 잔치국수, 그리고 사람 속에서 회복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배웠다.
오늘은 회복 12일차다. 오늘도 루틴대로 일어나 아침 산책을 준비했다.
엄마 방을 살짝 보니 엄마는 방에 안 계신 것 같았다.
아마 벌써 하루를 시작하신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언밸런스한 날씨
요즘은 기온 차 때문인지 조금 늦게 개울가에 나가도 물안개가 살짝 남아 있다.
참 신기하다.
낮에는 정말 덥다.
후덥지근해서 짜증이 날 만큼 덥다.
그런데 밤이 되면 이곳은 제법 춥다.
창문을 닫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자야 할 정도다.
낮에는 여름 같고, 밤에는 다른 계절 같다.
참 언밸런스한 날씨 속에서 지내고 있다.
꽃밭에서 풀을 뽑고 계신 엄마
오늘은 이상하게 산책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날보다 조금 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집을 향해 걸어오는데 꽃밭 쪽에서 엄마 모습이 보였다.
역시 엄마는 그냥 계시지 않았다.
아침 일찍부터 꽃밭에 있는 풀을 뽑고 계셨다.
군데군데 풀은 이미 뽑혀 있었고, 꽃이 피었다가 자기 몫을 다한 자리도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는 풀만 뽑는 것이 아니었다.
진 꽃도 정리하고, 가지도 다듬고, 꽃밭 전체를 말끔하게 만들고 계셨다.
엄마를 닮은 나의 성향
정말 우리 엄마는 깔끔한 사람이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면 그냥 대충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끝까지 해야 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은 정리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다.
가만히 보니 그 성향을 나도 많이 닮았다.
나도 일을 시작하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정확하게 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미리 준비해 두어야 안심이 된다.
이런 것도 결국 엄마를 닮은 것인가 보다.
괜히 웃음이 났다.
햇빛은 따갑고, 엄마의 걱정은 더 따뜻했다
나는 엄마가 뽑아 놓은 풀을 감나무 밑에 버렸다.
엄마가 가위로 정리하던 꽃들도 내가 대신 다듬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꽃밭을 정리했다.
시간이 지나자 햇빛이 점점 따가워졌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며 성화셨다.
"안 그래도 너 얼굴이 많이 탔던데."
"이렇게 햇빛 받으면 안 돼."
"그만 들어가."
아픈 몸으로도 딸 얼굴이 타는 것이 더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나는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고, 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며 엄마를 도왔다.
아침 9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도 꽃밭 정리는 끝나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엄마, 밥 먹고 하자."
그렇게 말해도 엄마는 싫다고 하셨다.
결국 30분 정도를 더 하시고 나서야 마무리를 하셨다.
꽃밭을 정리한 뒤 이어진 엄마의 아이고 소리
일을 끝낸 뒤 엄마는 오전 내내 "아이고." 소리를 하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괜히 속상했다.
엄마는 조금만 움직여도 삭신이 쑤신다고 하신다.
오늘은 분명 무리를 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꽃밭을 그냥 두지 못하신다.
아픈 몸보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더 먼저인 사람.
그것이 우리 엄마다.
조금 속상하고, 조금 안쓰러웠다.
엄마표 잔치국수 한 그릇
그래도 배는 고프셨던 모양이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잔치국수 끓여 먹자."
나는 밭에 가서 애호박 하나를 따왔다.
호박을 볶아 고명으로 올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가 맛있게 드셨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모르겠다.
오후에도 엄마는 계속 누워 계셨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엄마는 다시 누우셨다.
몸이 많이 힘드셨는지 "아이고." 하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표정도 밝지 않았고, 괜히 짜증도 내셨다.
나는 오늘 꽃밭 일을 너무 무리해서 하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회관에 같이 가자고 찾아온 동네 어르신들
그런데 한참이 지나자 밖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안 나와요?"
동네 어르신 두 분이 회관에 같이 가자며 엄마를 부르러 오신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이 마을 어르신들의 일상이었다.
오후가 되면 회관 앞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엄마는 잠시 망설이셨다.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몸이 아파 그냥 있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나가서 이야기하고 놀면 좀 괜찮아지겠지."
그 말을 하시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엄마는 회관을 향해 걸어가셨다.
사람마다 회복하는 방법은 다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회복하는 방법은 참 다르다.
나는 혼자 산책을 하고, 자연을 바라보고, 글을 쓰며 회복하는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데 엄마는 다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다시 힘이 생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약도 필요하지만,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도 또 하나의 약인지 모르겠다.
조금 뒤 회관에서 돌아오신 엄마의 얼굴은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나는 웃으며 생각했다.
'엄마에게는 사람도 약이구나.'
회복 12일차, 오늘 내가 배운 것
오늘은 회복 12일차.
엄마의 꽃밭에서 나를 보았고, 잔치국수 한 그릇에서 사랑을 먹었다.
그리고 회관으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배운 하루였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혼자 있을 때 회복되는 사람일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회복되는 사람일까?
- 내가 부모님에게서 닮았다고 느끼는 성향은 무엇일까?
- 오늘 나에게 약이 되어 준 사람이나 시간이 있었을까?
#회복12일차 #회복일기 #엄마텃밭출근일기 #뇌동맥류회복기 #뇌동맥류수술후기 #뇌동맥류수술 #엄마의꽃밭 #꽃밭가꾸기 #시골생활 #시골일상 #엄마와딸 #잔치국수 #애호박요리 #회관이야기 #사람사는이야기 #공동체의힘 #자연속회복 #쉼의시간 #마음회복 #부모의사랑 #건강회복 #중년건강 #50대이야기 #중년의삶 #일상에세이 #중년에세이 #오늘의기록 #한결같은민주 #보라강민주
```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