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9일째, 오늘은 폭우와 분리수거, 휴대폰을 들고 찾아온 앞집 아주머니, 수제비 한 그릇, 그리고 마을회관 저녁 준비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회복하는 법을 배웠다.
오늘은 회복 19일차다.
오늘은 동네 분리수거하는 날이다.
어제 미리 분리수거장에 가져다 놓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계속 말리셨다.
"비 오는데 뭐 하러 지금 가."
"내일 아침에 가져다 놔."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었다.
새벽 2시에 잠들고, 폭우 소리에 다시 깼다
문제는 내가 어제 잠들 시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새벽 2시쯤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30분쯤 잤을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비가 지붕과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다시 잠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새벽 6시쯤 되자 엄마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부스럭.
쓰레기를 정리하는 소리였다.
'아, 분리수거 준비를 하시는구나.'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일어나 내가 분리수거를 정리해서 장소까지 가져다 놓았다.
엄마가 하셔야 할 일을 조금이라도 대신해 드리고 싶었다.
우산 없이 나간 아침 산책
다시 방으로 들어와 누워 보았지만 잠은 이미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그냥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휴대폰으로 날씨를 확인해 보니 한 시간 정도 뒤에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그 말을 믿고 우산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날씨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했는데 금세 빗줄기가 굵어졌다.
근처 건물 처마 밑으로 들어가 한참을 비를 피했다.
그런데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세차게 내렸다.
비 오는 길에서 얻어 탄 화물차
그때 저희 마을 쪽으로 가는 화물차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차가 멈췄다.
"얼른 타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반갑던지.
덕분에 동네 입구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운전하시는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집까지는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
옷은 젖었지만 마음은 참 따뜻했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하루를 참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휴대폰이 죽었다며 찾아온 앞집 아주머니
아침을 먹고 엄마는 하우스로 나가셨다.
마늘 줄기를 정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앞집 아주머니가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야, 야."
"휴대폰이 죽었어."
"분명 충전해 놨는데 아무것도 안 돼."
나는 휴대폰을 받아 전원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 반응이 없었다.
휴대폰 케이스를 벗겨 보니 먼지도 많고 조금 지저분했다.
깨끗하게 닦아 다시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한참 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다.
'정말 고장 난 건가?'
그런데 조금 지나자 이동통신사 로고가 나타났다.
"아주머니, 됐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머니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어르신들에게 기계는 참 어려운 일이다
사실 우리 엄마도 기계만 보면 긴장하신다.
예전에도 내가 집에 없을 때 전화를 여러 번 하셨다.
"TV가 안 나와."
"전원은 들어오는데 화면이 이상해."
전화로 이것저것 말씀드려도 잘 안되면 결국 동네에 사는 여동생 친구를 불러 달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앞집 아주머니도 비슷했다.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며칠 전에는 에어컨이 꺼지지 않는다며 찾아오신 적도 있었다.
가서 보니 다른 버튼을 잘못 누르신 것이었다.
버튼 하나를 눌러드리니 바로 꺼졌다.
사실 나도 기계를 아주 잘 다루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느끼는 난감함이 무엇인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작은 일 하나 해결했을 뿐인데 같이 웃을 수 있었던 아침이었다.
점심에는 수제비를 끓였다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점심에 수제비 할 건데 같이 드세요."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하셨다.
점심이 되어 밀가루 반죽을 하고, 감자를 깎고, 호박을 썰어 수제비를 만들었다.
완성된 수제비를 보니 괜히 뿌듯했다.
나는 아주머니를 모시러 다시 다녀왔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연신 맛있다고 하시며 드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올라왔다.
'그래도 두 분이 이 정도 건강하게 함께 식사하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마을회관에서 함께 준비하는 저녁
오후가 되자 앞집 아주머니가 다시 엄마를 찾으셨다.
오늘 저녁은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라고 하셨다.
앞집 아주머니가 그래도 젊은 편이라 오늘 반찬을 맡으셨다고 한다.
오늘 메뉴는 메밀나물이었다.
밭에서 메밀나물을 직접 잘라 오셨다고 하셨다.
궁금한 마음에 나도 마을회관에 가 보았다.
아주머니는 큰 대야에 메밀나물을 담아 정성스럽게 씻고 계셨다.
마을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처럼 혼자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운 분들도 많다.
그래서 이렇게 함께 반찬을 만들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또 하나를 배웠다.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메밀을 씻고, 누군가는 반찬을 만들고, 누군가는 함께 식사를 한다.
혼자였다면 힘들었을 일도 함께하면 웃으며 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참 많은 사람의 도움과 웃음이 함께한 하루였다.
- 비 오는 길에서 화물차를 얻어 탔고
- 휴대폰 때문에 걱정하시던 아주머니와 함께 웃었고
- 수제비 한 그릇을 함께 나누어 먹었고
- 마을회관에서는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회복이라는 것은 몸만 좋아지는 과정이 아닌 것 같다.
사람들과 함께 웃고,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도와주는 시간이 쌓여 마음도 함께 회복되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회복 19일차, 오늘 내가 배운 것
오늘은 회복 19일차.
비를 피해 얻어 탄 화물차도, 환하게 웃으시던 아주머니의 얼굴도, 수제비를 맛있게 드시던 엄마도, 메밀나물을 씻으며 저녁을 준비하시던 마을 어르신들도 모두 내 회복의 한 장면이 되었다.
회복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배운 하루였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오늘 누구의 도움을 받았을까?
-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 함께 먹은 한 끼가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 적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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