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22일째, 오늘은 새벽부터 아욱을 손질한 엄마와 텃밭의 풀 문제를 해결해 준 남동생을 보며 가족의 사랑을 다시 생각했다.
오늘은 회복 22일차다.
몸은 아직 천천히 회복 중이지만, 엄마와 함께 지내는 하루하루는 내 마음에 새로운 이야기를 채워주고 있다.
오늘도 겉으로 보면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엄마의 부지런함과 남동생의 걱정, 그리고 말보다 행동으로 전해지는 가족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디서부터 풀을 뽑아야 할지 막막했던 텃밭
며칠 전부터 엄마는 텃밭을 바라볼 때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풀이 너무 많이 자랐네."
엄마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나도 풀을 뽑아보려고 텃밭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막상 텃밭에 들어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풀이 훨씬 많았다.
조금 뽑아보았지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쪽을 뽑으면 다른 쪽 풀이 더 크게 보였고, 혼자서 모두 정리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풀을 뽑아보려고 했는데 안 될 것 같아."
엄마도 이미 텃밭을 살펴보고 오신 모양이었다.
"응, 뽑는 것은 무리야."
그러시더니 바로 남동생에게 전화를 하셨다.
"주말에 와서 풀약 좀 줘야겠다."
엄마는 힘들다고 가만히 걱정만 하는 분이 아니다.
혼자 할 수 없다면 누가 도와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바로 해결 방법을 찾으신다.
아침부터 들려온 달그락 소리
오늘도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눈을 떴다.
누운 자리에서 천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 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처음에는 엄마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 줄 알았다.
'엄마가 벌써 일어나셨나?'
그런데 현관을 보니 엄마 신발은 그대로 있었다.
어디로 가셨는지 궁금해 방을 열어보았다.
엄마는 안 계셨다.
'어? 어디 가셨지?'
세탁실 문을 열고 뒷문으로 나가 보니 엄마는 뒷마당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계셨다.
새벽부터 아욱을 뽑아 손질한 엄마
옷을 챙겨 입고 뒷마당으로 가보니 엄마는 아욱을 모두 뽑아 손질하고 계셨다.
억센 줄기와 잎은 골라내고 맨 위쪽에 있는 연한 부분만 하나씩 끊어 모으셨다.
골라낸 아욱은 깨끗한 물에 씻고 계셨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욱 이제 뽑아내야 하는데."
그 말이 마음에 계속 남아 있었는지 오늘 아침 일찍 혼자 아욱을 모두 뽑으신 것이다.
정말 우리 엄마는 일을 미루지 못하는 사람이다.
몸이 아파도 해야 한다고 마음먹으면 먼저 몸을 움직이신다.
그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조금만 움직이고도 온몸이 아프다고 하실 것을 알기에 마음 한편이 아프다.
나는 엄마에게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물안개를 볼 수 없었다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고 날씨도 계속 더웠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산책길에서 매일 보던 물안개를 만날 수 없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자연은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날은 개울을 덮은 물안개가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고, 어떤 날은 뜨거운 여름 햇살이 길을 먼저 차지한다.
오늘은 물안개를 찾기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그때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빨리 오라고 하셔."
무슨 일인가 싶어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산책을 나간 사이 풀약을 준 남동생
집으로 돌아오니 남동생은 이미 텃밭에 풀약을 모두 주고 들어와 있었다.
내가 산책을 나가자마자 도착해 바로 일을 시작한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엄마가 걱정하던 풀이 남동생의 손을 빌려 정리된 것이다.
엄마는 그사이 아욱국도 끓여놓고 계란탕도 만들고 계셨다.
새벽부터 아욱을 뽑고 손질한 뒤 바로 아침밥까지 준비하신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었다.
누군가는 아욱을 손질하고, 누군가는 텃밭에 약을 주고, 그렇게 각자 맡은 일을 한 뒤 함께 먹는 아침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엄마는 많이 피곤하셨는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주무셨다.
아침 일찍부터 쉬지 않고 움직이셨으니 몸이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누나, 콩국수 맛있는 곳이 있는데 가자
엄마가 주무시는 동안 남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동생이 말했다.
"누나, 콩국수 맛있는 곳이 있는데 먹으러 가자."
나는 준비를 하고 남동생과 함께 집을 나섰다.
식당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다.
차를 타고 50분 정도 이동한 것 같다.
산자락 아래에 자리 잡은 깔끔한 식당이었다.
예전에는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했던 곳을 식당으로 고친 듯했다.
남편은 홀을 맡고 아내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는 수제비와 비빔국수, 콩국수를 판매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꾸민 곳은 아니었지만 실내는 깔끔했고,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었다.
우리는 수제비와 콩국수를 먹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콩국수와 수제비도 맛있었지만 남동생과 함께 먼 길을 다녀오며 나눈 시간이 더 좋았다.
엄마를 많이 챙기는 남동생
우리 남동생은 엄마를 참 많이 위하고 챙기는 효자 아들이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효자 아들은 아내가 힘들 수 있어."
그런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잘하는 남동생이 참 고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요즘은 내가 엄마 곁에 있으니 남동생이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없을 때는 엄마에게 아주 작은 일이 생겨도 가까이 사는 남동생이 와서 해결해 주었다.
집에 문제가 생기거나 텃밭에 손이 필요할 때도 동생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남동생이 감당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하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올라온다.
엄마도 걱정이지만 아픈 누나도 걱정돼
오늘도 남동생은 아침 일찍 찾아와 텃밭에 풀약을 주었다.
엄마의 일을 해결해 드린 뒤에는 아파서 엄마 집에 내려와 있는 누나를 데리고 맛있는 콩국수를 먹으러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말했다.
"엄마도 걱정이지만, 아파서 여기 와 있는 누나도 걱정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평소에는 무심한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동생도 엄마와 누나를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은 때로 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걱정된다는 한마디를 건네고, 필요한 일을 먼저 해주는 것으로 마음을 보여준다.
회복 22일차, 가족이라는 이름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아주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 엄마는 새벽부터 아욱을 뽑아 손질했고
- 남동생은 텃밭에 풀약을 주었고
- 우리는 함께 아욱국으로 아침을 먹었고
- 남동생과 멀리 있는 식당까지 가서 콩국수를 먹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 안에는 가족의 마음이 가득했다.
엄마는 몸이 아파도 가족에게 먹일 아욱국을 끓이셨고, 남동생은 엄마가 해결하지 못한 텃밭 일을 말없이 처리했다.
그리고 아픈 누나가 걱정된다며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가족은 거창한 말로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 것 같다.
필요한 순간 곁으로 와 주고, 혼자 하기 힘든 일을 해결해 주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먹는 것으로 마음을 전한다.
오늘 회복한 것은 몸만이 아니었다. 가족이 보여주는 사랑은 말보다 행동에 먼저 담겨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운 하루였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내 가족은 어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을까?
-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일을 감당한 가족은 없었을까?
- 오늘 내가 가족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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