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23일차, 우리 안에도 호박처럼 끝없이 열매 맺는 화수분이 있을까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이어가는 23일차, 오늘은 좋지 않은 수면과 엄마의 컨디션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했다. 산책길에서 만난 들깨 모종과 텃밭의 호박 두 그루를 바라보며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화수분 같은 장점과 재능을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회복 23일차다.

요즘은 잠을 자도 개운하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밤에 잠이 들어도 화장실 때문에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잠에서 깨는 것 같다.

사실 엄마 집에 오기 전부터 수면의 질은 좋지 않았다.

오늘도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눈이 떠졌다.

'조금만 더 자야지.'

다시 눈을 감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아침부터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산책길에서 만난 들깨 모종 풍경

길을 걷다 보니 오늘도 들깨 모종을 심고 있는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언제부터 나오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분은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셨다.

이곳에서는 산책을 하다 보면 매일 다른 밭에서 들깨 모종을 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오늘 만난 부부는 넓은 밭에서 들깨 모를 심고 있었고, 며칠 전에는 또 다른 밭에서 다른 분들이 모종을 하고 계셨다.

조금 더 걸어가니 다른 넓은 밭에서도 들깨 모종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의 천 평 가까이 되어 보이는 밭에는 서울에 사는 동생까지 내려와 일을 돕고 있었다.

가족끼리 힘을 모으고도 일이 많아 사람을 더 불러 모종을 심는 것 같았다.

산책을 하며 이런 모습을 계속 만나다 보니 지금 이 동네는 들깨 모종으로 가장 바쁜 시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넓은 밭에 모종 하나하나를 심는 모습을 바라보며 농사는 참 많은 사람의 손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오늘은 엄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의 상태가 평소와 달라 보였다.

계속 방에 누워 잠만 주무셨다.

밥 생각도 없다고 하셨다.

그래도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면 기운이 더 떨어질 것 같아 엄마를 깨웠다.

조금이라도 드시도록 아침상을 차렸다.

엄마는 아침을 조금 드신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주무셨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엄마는 같은 말씀을 하셨다.

"밥 생각이 없어."

엄마가 식사를 하지 않으시니 나도 함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방에서 나오시며 말씀하셨다.

"속이 쓰리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거 배고파서 그런 것 같아."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조금만 먹어보겠다고 하셨다.


배가 고프지 않다던 엄마의 점심

나는 얼른 계란프라이를 만들었다.

며칠 전 구입한 아삭이고추도 깨끗하게 씻어 상에 올렸다.

엄마가 조금만 드시겠다고 해서 밥도 많지 않게 차려드렸다.

그런데 막상 식사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맛있게 드셨다.

식사를 마친 엄마가 말씀하셨다.

"밥을 먹었더니 이제 속이 안 쓰리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배고파서 그런 거라고."

엄마도 웃으셨다.

때로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다른 통증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나면 속이 편해지고 기운이 조금 돌아오기도 한다.

점심을 드신 엄마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누우셨다.


오늘은 왜 아주머니가 오지 않을까

이 시간쯤이면 앞집에 사시는 8학년 5반 아주머니가 엄마를 부르러 오실 때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머니가 오지 않으셨다.

나도 조금 궁금했지만 엄마가 더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엄마는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오늘은 회관에 간식이 없나 봐."
"그러니까 나오라고 안 하지."

몸이 좋지 않아 계속 누워 계셨지만, 마음 한쪽으로는 회관에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직접 회관에 가보기로 했다.


안마기에 누워 계시던 8학년 5반 아주머니

우리 집과 마을회관은 바로 붙어 있다.

대문만 나가면 회관 실외기가 가까이 보인다.

밖으로 나가니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회관 안에 있기는 있나 보다.'

회관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쪽 방문을 열어보니 앞집 8학년 5반 아주머니가 안마기에 누워 안마를 받고 계셨다.

나는 아주머니께 말했다.

"엄마 나오시라고 할게요."

그 말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회관에 가보시라고 말씀드리자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엄마는 머리를 만져보며 물으셨다.

"내 머리 미친년 머리 같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머리 빗고 가세요."

엄마는 얼른 머리를 빗으시더니 조금 전까지 누워 계셨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회관으로 향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웃음이 났다.

엄마에게 회관은 단순한 마을 공간이 아니다.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터 같기도 하고, 마음의 피로를 잠시 내려놓는 쉼터 같기도 하다.


두 그루의 호박이 주는 끝없는 선물

우리 집 텃밭에는 호박 모종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엄마에게 주신 호박 모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그루의 호박이 참 신기하다.

성장 속도도 빠르고 자기 몫을 참 열심히 한다.

며칠에 한 번씩 예쁘게 자란 호박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호박이 생길 때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 얇게 썰어 호박볶음을 만들고
  • 밀가루와 달걀을 입혀 호박전을 부치고
  • 호박을 먹기 위해 일부러 수제비를 끓이기도 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먹고 있는데도 호박은 또다시 예쁜 열매 두 개를 내어주었다.

꽃도 계속 피고 있고, 작은 열매들도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있다.

마치 아무리 꺼내 써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 같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화수분 같은 장점이 있을까?'


우리 안에도 화수분 같은 장점이 있다

호박은 자기 안에 있는 힘을 의심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또 열매를 키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계속한다.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화수분이 하나씩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따뜻한 말을 끊임없이 건넬 수 있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또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가르치고, 다른 사람을 웃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안에는 분명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잘하는 것이 없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자신이 가진 가능성보다 걱정과 두려움을 먼저 바라본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것을 찾아보기 전에 두려움부터 느꼈던 시간이 있었다.

오늘 호박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화수분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하나씩 주어진 선물일지도 모른다.


회복 23일차, 내 안의 화수분을 믿어보기

오늘은 들깨 모종을 심는 사람들의 부지런한 손을 보았다.

몸이 좋지 않아 계속 누워 계시던 엄마가 회관에 갈 생각에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두 그루의 호박이 쉬지 않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회복이란 몸이 좋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발견하는 과정도 회복의 일부인지 모른다.

오늘은 나 자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내 안에는 어떤 화수분이 숨어 있을까?'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두려움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던 일,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잘한다고 말해주었던 일,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고 다시 하고 싶은 일 속에 그 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내 안의 화수분을 믿고 두려움보다 먼저 세상에 꺼내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의 한 줄

우리 안에도 호박처럼 끝없이 열매를 맺는 화수분이 하나쯤은 숨어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잘한다고 말해준 것은 무엇일까?
  • 오래 해도 지치지 않고 다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 내가 누군가에게 계속 나누어줄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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