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이어가는 25일차, 밤새 이어진 폭우와 강풍으로 잠을 설친 뒤 두통과 소화불량까지 찾아왔다. 초복 삼계탕을 함께 나누고, 회관 앞에 모인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의 온기가 회복에 주는 힘을 다시 느낀 하루였다.
오늘은 회복 25일차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오락가락하며 이어졌다.
비만 내린 것이 아니라 강한 바람까지 함께 불어 깊은 잠을 자는 데 말썽쟁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제는 잠들 시기를 놓쳐 새벽 1시쯤에야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2시가 조금 지나자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다시 커졌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과 세차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비와 바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비는 일정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세차게 퍼붓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서인지 오늘은 머리가 아프고 몸도 무거웠다.
전깃줄에 모인 까마귀들의 아침 대책회의
오늘 아침 나를 깨운 것은 비와 바람만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몇 마리씩 보이던 까마귀들이 집 앞 전깃줄에 많이 모여 있었다.
까악까악 울어대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더 이상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까마귀들은 서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쉴 새 없이 울어댔다.
'비바람 때문에 대책회의를 하는 걸까?'
'아니면 오늘 먹이를 어디에서 찾을지 의논하는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까마귀들의 아침 회의는 제법 요란했다.
결국 나는 잠을 포기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논의 물고를 보러 자전거를 타고 나선 아주머니
비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대문 밖으로 나갔다.
마침 앞집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끌고 나오고 계셨다.
나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아줌마, 또 어디 가세요?"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셨다.
"논에 물고 보러 가."
논에 물이 너무 많이 차지 않았는지, 물길은 잘 열려 있는지 살펴보러 가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우비도 입지 않고 우산도 챙기지 않으셨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말씀드렸다.
"비가 다시 오면 어떡하려고 그러세요?"
"자전거 타지 말고 우산 쓰고 걸어가세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하셨다.
아주머니 모습이 내 눈에서 사라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폭우가 쏟아졌다.
나는 걱정되어 처마 밑에 서서 아주머니가 돌아오시는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아주머니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돌아오고 계셨다.
머리부터 옷까지 흠뻑 젖어 정말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이었다.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러게, 내가 비가 온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잠깐은 샘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었다.
두통이 있어 오늘은 쉬기로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두통이 조금 있었다.
잠이 부족한 데다 비와 바람 소리로 밤새 긴장했던 영향도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되도록 쉬기로 했다.
회복을 시작할 때는 쉬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힘들다고 말할 때 멈추는 것도 회복을 위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초복에 끓인 토종닭 삼계탕
오늘은 초복이었다.
며칠 전 미리 사다 놓은 토종닭이 있어 점심에는 삼계탕을 끓이기로 했다.
앞집 아주머니도 함께 드시면 좋을 것 같아 점심때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닭을 깨끗하게 손질하고 마늘을 까서 압력솥에 함께 넣었다.
닭을 푹 삶는 동안 죽에 넣을 재료도 준비했다.
텃밭으로 가서 파를 서너 뿌리 뽑아오고, 하우스에서는 큼직한 양파 하나를 가져왔다.
압력솥의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주방에는 닭이 익는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비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따뜻한 삼계탕 냄새가 집 안을 채우니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초복에 함께 나누어 먹은 따뜻한 토종닭 삼계탕
엄마와 아주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
삼계탕이 거의 완성되어 앞집으로 아주머니를 부르러 갔지만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와 둘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상을 다 차리고 먹으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다행히 셋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었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삼계탕을 맛있게 드셨다.
닭을 먹은 뒤 끓여드린 죽도 한 그릇씩 맛있게 비우셨다.
두 분이 잘 드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속에서 감사함이 올라왔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지만 함께 식탁에 앉아 따뜻한 음식을 맛있게 드실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입맛이 없는데 억지로 먹은 뒤 찾아온 불편함
하지만 나는 두통 때문인지 입맛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함께 먹는 자리이니 조금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삼계탕을 먹었다.
그런데 몸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억지로 먹은 탓인지 속이 더 불편해졌다.
음식이 체한 것처럼 답답했고 어지러움까지 심해졌다.
몸에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이 계속 세게 불고 있어 방 안보다 바깥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는 예전 시골집의 마루와 비슷한 베란다 공간에 캠핑 의자를 펼쳐놓고 앉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내 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지금 내 몸은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결국 소화제를 먹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조용해진 집과 엄마의 전화
잠에서 깨어보니 집 안은 조용했다.
엄마는 이미 마을회관으로 나가신 것 같았다.
조금 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계속 누워 있는 것이 걱정되셨던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심심해서 나도 함께 있기를 바라셨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도 회관으로 나와."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천천히 회관 앞으로 나갔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도 회관에 나온 아주머니
회관 앞에는 평소 자주 만나던 고정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바람이 여전히 많이 불고 있어 모두 회관 앞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계셨다.
아주머니들은 오늘 날씨가 꼭 가을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바람이 많이 부네."
"날씨가 꼭 가을 같아."
한 아주머니는 무릎이 많이 아프신지 동전 모양의 파스를 무릎 주변에 덕지덕지 붙이고 계셨다.
그 위에는 압박스타킹까지 신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릎이 얼마나 불편한지 느껴졌다.
그런데도 집 안에 혼자 계시지 않고 회관 앞으로 나오셨다.
몸이 아파도 사람을 만나고 싶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아픈 이야기조차 함께 나누면 일상이 된다
회관 앞에서는 특별하거나 거창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아니었다.
- 밤새 내린 비와 강한 바람 이야기
- 논에 물이 얼마나 찼는지에 대한 농사 이야기
- 무릎과 허리, 삭신이 아프다는 몸 이야기
-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안부와 동네 소식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분이 맞장구를 쳤다.
가끔은 서로 다른 말을 동시에 하기도 하고, 잘 듣지 못해 같은 말을 다시 묻기도 했다.
그래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몸은 저마다 아픈 곳이 있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만큼은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우리 엄마가 매일 회관으로 출근하는 이유도 조금 더 알 것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단순히 심심함을 달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기운을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회복 25일차, 사람의 온기도 약이 된다
오늘은 몸이 편하지 않은 하루였다.
밤새 잠을 설쳤고, 두통이 있었으며, 삼계탕을 조금 먹은 뒤에는 속까지 불편해졌다.
몸이 좋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누워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를 돌아보니 내 곁에는 계속 사람들이 있었다.
앞집 아주머니가 논의 물고를 살피러 다녀오는 모습을 걱정했고, 엄마와 아주머니를 위해 삼계탕을 끓였다.
엄마는 잠들어 있는 나를 걱정해 회관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회관 앞에서는 몸이 아픈 어르신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있었다.
약도 필요하고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고, 안부를 묻고, 평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도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몸이 힘든 날일수록 사람의 따뜻한 말과 곁을 내어주는 관계가 마음을 먼저 회복시키는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낀 하루였다.
오늘의 한 줄
몸이 아픈 날에도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혼자 아픈 것이 아닙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몸과 마음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 함께 먹었던 따뜻한 한 끼가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나요?
- 오늘 내가 안부를 물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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