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29일차. 오늘은 엄마와 함께 마늘을 까고 작은 절구에 직접 빻았습니다. 마늘 껍질을 벗기자 겉에서는 보이지 않던 상처가 드러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긴 상처와 칼에 베인 상처를 살펴보며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엄마와 한방에서 보낸 잠이 부족한 밤
엄마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습니다. 평소 내가 사용하던 방을 동생 부부에게 내어주어야 해서 어젯밤에는 엄마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엄마는 잠을 주무시면서 꿈도 많이 꾸시고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자면 나도 깊이 잠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제는 잠들 타이밍까지 놓쳐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동생이 엄마의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잘 주무셨어? 컨디션은 괜찮아?”
동생은 엄마의 안부를 확인한 뒤 다시 자기가 자는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오가는 발소리를 듣고 나니 더 이상 잠을 자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결국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비 오는 아침, 전봇대에서 열린 까마귀 회의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요즘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 집 앞 전봇대가 까마귀들의 회의 장소가 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까마귀들이 모여 깍깍거리며 아침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한 마리가 울면 다른 까마귀가 대답하고, 또 다른 까마귀가 끼어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무슨 중요한 안건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까마귀들에게는 비 오는 날마다 빠질 수 없는 공식 일정인 모양입니다.
잠이 부족한 내 귀에는 조금 시끄럽게 들렸지만 그 소리마저 시골의 비 오는 아침을 알리는 배경음처럼 느껴졌습니다.
동생 부부는 오전 7시쯤 평소의 생활 리듬에 맞춰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집에는 엄마와 나만 남았습니다.
누룽지를 먹다가 갑자기 시작된 마늘 까기
엄마에게 아침을 어떻게 드시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엄마는 누룽지를 끓여 먹자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마주 앉아 누룽지를 먹는데 엄마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까려고 했던 마늘을 오늘 까야겠다.”
나는 마늘을 물에 담가두면 껍질이 더 쉽게 벗겨질 것 같아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물에 담가놓을까요?”
엄마는 바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물에 담가놓으면 마늘 맛이 물에 다 빠져나가잖아.
호스로 물만 적셔놓고 조금 있다 까면 잘 까져.”
역시 엄마에게는 엄마만의 오랜 살림 방법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침을 먹은 그릇을 치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벌써 마늘의 절반가량을 물에 적셔놓으셨습니다.
옆에서는 텃밭에서 따온 호박 두 개를 깨끗하게 씻고 계셨습니다.
오늘도 쉬지 않는 텃밭의 호박 화수분
우리 텃밭의 호박은 오늘도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따고 돌아서면 또 열리고, 며칠 지나면 어느새 먹기 좋은 크기로 자라 있습니다. 정말 호박 화수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엄마는 호박을 씻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호박 많이 썰어 넣고 호박전 부쳐 먹어야겠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며 필요한 일을 도왔습니다.
마늘에 묻은 물이 어느 정도 빠지자 엄마는 마늘을 소쿠리에 담아 방으로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소쿠리에 담긴 마늘을 바라보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많은 마늘을 다 까고 나면 엄마가 또 얼마나 힘들어하실까 싶었습니다. 나 역시 마늘 까기 같은 일을 자주 해보지 않은 불량 주부라 시작하기 전부터 조금 겁이 났습니다.
작은 칼 하나씩 들고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는 장갑을 끼고 작은 칼을 하나씩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주 앉아 마늘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마늘 껍질을 벗겨보니 상처가 있는 마늘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어떤 마늘에는 자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흠집이 있었고, 또 어떤 마늘에는 칼에 베인 듯한 선명한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이 마늘은 왜 이렇게 상처가 났어요?”
엄마는 며칠 전 우리가 마늘대를 자르고 마늘을 쪼개던 일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마늘이 잘 나뉘지 않아 칼을 사용했는데 그때 칼끝이 마늘에 닿아 상처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가 난 부분부터 마늘이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마늘의 상처와 사람의 마음은 닮아 있었다
마늘에 있는 상처는 모두 같은 이유로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흙 속에서 자라고 비와 바람을 견디며 자연스럽게 생긴 상처도 있었고, 누군가의 손과 칼에 의해 생긴 상처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지닌 마음의 상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쉽게 불안하거나 예민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형성된 성격과 관계의 방식 때문에 반복적으로 마음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늘이 흙과 햇볕, 비와 바람을 견디며 자연스럽게 얻은 흔적과 닮아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이 마음을 깊이 베기도 합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난하고 몰아붙이면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 상처는 칼끝에 베인 마늘처럼 처음에는 작아 보여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안쪽으로 깊어질 수 있습니다.
엄마는 상처 난 부분을 깨끗하게 도려내라고 했다
엄마는 상처가 생겨 변색되거나 썩기 시작한 부분을 깨끗하게 도려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건 다 깨끗하게 잘라내야 해. 그래야 먹을 때 깔끔하지.”
엄마의 말을 듣는데 마음 한쪽에 질문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상처를 어떻게 돌보고 있을까?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이야기하며 상처를 정리합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거나 울면서 감정을 흘려보냅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통하는 단 하나의 회복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나에게 잘 맞을 수도 있고, 때로는 조금 수정해야 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없는 것처럼 덮어두는 것만이 해결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처를 도려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
썩어가는 부분을 그대로 둔 마늘은 결국 더 넓게 상합니다. 마음의 상처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픈 부분을 살피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마음의 상처를 도려낸다는 것이 아픈 기억을 억지로 없애거나 잊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상처가 더 이상 내 삶 전체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건강한 부분과 구분하고 돌보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회복은 상처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알아차리고 돌보는 과정입니다.
마늘을 다 깐 뒤 찾아온 짧은 휴식
한참 동안 마늘을 까고 나니 손과 어깨가 뻐근했습니다.
마늘을 다 정리한 뒤 엄마는 안마의자에 앉아 몸을 풀다가 잠깐 잠이 드셨습니다.
나는 거실에 누워 노래를 들으며 뒹굴거렸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닥에 누워 음악을 듣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잠도 부족했고 아침부터 마늘을 까느라 몸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쉼이 필요했습니다.
회복 중에는 무엇을 했는지만큼 언제 멈추고 쉬었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호박전 여섯 장에 나누어 담긴 마음
조금 쉬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아침에 엄마가 따온 호박과 텃밭에서 뜯어온 부추를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호박을 채 썰고 부추를 잘라 넣어 호박전 반죽을 만들었습니다.
프라이팬에 한 장씩 부치니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 찼습니다.
호박전 한 장을 먼저 부친 뒤 잠들어 있던 엄마를 깨웠습니다. 엄마는 거실로 나오셔서 호박전을 맛보시더니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호박전은 모두 여섯 장이 나왔습니다.
- 두 장은 앞집 아주머니 댁에 가져다드렸습니다.
- 두 장은 엄마와 내가 함께 먹었습니다.
- 나머지 두 장은 다음에 먹으려고 남겨두었습니다.
여섯 장의 호박전이 세 몫으로 나뉘었습니다.
많은 음식은 아니었지만 이웃과 나누고, 엄마와 함께 먹고, 다음 식사를 위해 남겨두니 오히려 더 넉넉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하자던 마늘을 결국 오늘 빻았다
분명 마늘을 찧는 일은 나중에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호박전을 먹고 잠시 쉬려는데 엄마가 다시 마늘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엄마, 이건 나중에 하기로 했잖아요.”
내가 말하자 엄마는 오늘 그냥 다 해버리자고 하셨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집에서는 마늘을 믹서에 갈아 냉동실에 보관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믹서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작은 절구에 마늘을 조금씩 넣고 손으로 직접 빻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절굿공이를 반복해서 내리치니 팔이 금세 아파왔습니다. 자주 하는 일이 아니어서인지 손목과 어깨에도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네가 아프면 어떻게 해, 내가 아프고 말지”
내가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엄마는 자꾸 자신이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엄마가 더 힘드실 것 같아 계속 내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런 것 안 하잖아. 하다가 아프면 어떻게 해. 내가 아프고 말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조금 속상했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러면 나는 엄마가 아파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는 딸이 아플까 걱정하고, 딸은 엄마가 아플까 걱정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 절굿공이를 넘겨주며 번갈아 마늘을 빻았습니다. 내가 몇 번 빻으면 엄마가 이어서 하고,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다시 내가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작은 절구 안의 마늘을 모두 빻았습니다.
엄마와 딸은 서로 자신이 더 아프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결국 서로 조금씩 나누어 아픈 것이 가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회복 29일차, 오늘은 조금 힘든 하루였다
마늘을 모두 빻고 난 뒤 뒷정리는 내가 했습니다.
사용한 절구와 그릇을 씻고 바닥에 떨어진 마늘 껍질과 부스러기를 정리했습니다.
오후 5시가 넘자 엄마는 마을회관으로 출근하듯 집을 나서셨습니다.
아침부터 마늘을 까고 호박전을 드시고 마늘까지 빻았는데도 엄마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엄마가 나간 뒤 다시 거실 바닥에 누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뒹굴거리는 중입니다.
오늘은 조금 힘든 하루였습니다.
잠도 부족했고, 마늘을 까고 빻느라 손과 팔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도 엄마와 나란히 앉아 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마늘의 상처를 도려내면서 내 마음의 상처를 생각했고, 작은 절구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와 딸의 마음도 확인했습니다.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돌보는 일
오늘 마늘을 까지 않았다면 상처 난 부분이 안쪽에서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겉껍질을 벗기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상처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겉으로만 바라보면 괜찮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잘 웃고, 맡은 일을 해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마음의 껍질을 천천히 열어보면 오래전부터 아파하던 부분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회복은 상처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깊어지지 않도록 살피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돌보는 과정일 것입니다.
마늘의 상처를 도려낸다고 처음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썩은 부분을 정리하고 나면 남은 마늘은 다시 음식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상처 이전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처를 잘 돌보고 나면 그 흔적을 지닌 채로도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회복 29일차인 오늘, 나는 마늘의 상처를 도려내면서 상처를 숨기는 것보다 제대로 바라보고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한 줄
상처는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지지 않도록 알아차리고 나에게 맞는 방법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마음의 상처를 발견했을 때 주로 어떤 방법으로 돌보고 있나요?
- 오래 덮어두어 더 아파진 감정은 없는지요?
- 지금 사용하는 회복 방법은 나에게 잘 맞고 있나요?
- 오늘 내 몸이 쉬어야 한다고 보내는 신호는 무엇인가요?
- 서로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나누었던 가족의 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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