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의 시골집에 머문 지 32일째입니다. 비가 내렸다가 금세 햇살이 뜨거워지는 변덕스러운 날, 엄마와 시골버스를 타고 농협과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그 하루 끝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시골 어르신들의 외로운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회복일기를 쓰지 못한 하루도 회복이었습니다
회복 32일차입니다.
어제는 회복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하루를 빠뜨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글을 쓰지 못한 그 하루 역시 나에게는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회복은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하루를 내 몸의 속도에 맞춰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록하지 못한 하루도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하루 역시 내가 살아낸 회복의 일부입니다.
비가 내렸다가 금세 파란 하늘이 되는 날씨
요즘은 날씨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다가도 어느 순간 하늘이 파랗게 열리고, 곧바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쬡니다. 비와 햇빛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숨바꼭질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산책을 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비가 잦아들며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비가 다시 내릴지도 몰라 우산을 들고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데 우산을 쓴 이유
오늘도 어김없이 날파리가 나를 따라왔습니다.
얼굴 주변을 맴도는 소리도 신경 쓰였고, 눈앞을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도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쫓아도 잠시뿐, 금세 다시 얼굴 가까이 날아왔습니다.
결국 비도 내리지 않는데 우산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산을 쓰니 날파리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조금 줄어든 듯했습니다.
비를 피하려고 가져온 우산이 오늘은 날파리를 피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비가 언제 다시 내릴지 알 수 없는 날씨라 오늘은 푸놀치를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자연물을 찾기보다 그저 걷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날은 마음을 표현하고,
어떤 날은 걷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마음먹었을 때 해야 한다”는 엄마
오늘은 엄마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시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면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애매한 곳이지만 나는 그냥 시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엄마와 농협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고, 엄마가 걷는 일을 힘들어하셔서 나는 다음에 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도 처음에는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계속 창밖의 하늘을 살피시더니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그냥 가자.
마음먹었을 때 뭐든 해야 해.”
결국 엄마의 뜻대로 시내에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허리가 아파도 길을 나서는 엄마
그런데 집을 나서기 전부터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
“발짝을 떼는 것도 힘들다.”
“날이 후덥지근해서 땀이 너무 난다.”
걷기도 전에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보니 다음에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외출하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시는 엄마에게 내가 가져온 휴대용 선풍기를 틀어드렸습니다.
엄마는 작은 선풍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시더니 얼굴 가까이 가져가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시원하다.”
별것 아닌 작은 선풍기 하나가 후덥지근한 날씨에 엄마의 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가 오가는 시골버스
버스에 올라보니 오늘은 다섯 명이나 타고 있었습니다.
시골버스에서는 다섯 명도 많은 승객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정류장에서도 사람들이 더 타면서 버스 안이 제법 북적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오랜만이네.”
짧은 인사 한마디였지만, 오래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반기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도시의 버스에서는 대부분 앞만 바라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누가 타는지 살펴보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에는 먼저 말을 건넵니다.
조금 넓은 오지랖이 만든 따뜻한 장면
버스에 탄 분들 가운데 성당에 가시는 어르신들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당에서 내리지 않는 한 어르신이 기사님에게 다른 아주머니가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성당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좀 내려주세요.
저기서 내리면 오르막길에 계단까지 있어서 힘들어요.”
여러 사람이 정류장에서 내려 성당까지 걸어 올라가려면 힘드니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순간 참 오지랖이 넓은 어르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오지랖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힘든 걸음을 먼저 생각하고, 대신 기사님에게 한마디 해주는 모습이 오히려 따뜻했습니다.
시골의 오지랖은 간섭이 아니라
서로의 불편함을 살피는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 엄마는 ‘형님’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엄마와 천천히 농협을 향해 걸었습니다.
엄마는 허리가 아파 가는 길에 두 번이나 멈춰 쉬었습니다.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때 내가 보기에는 엄마보다 연세가 더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 엄마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형님, 오랜만이네.”
순간 조금 신기했습니다.
나에게는 늘 보호하고 걱정해야 하는 엄마인데, 누군가에게는 반갑게 안부를 묻는 ‘형님’이었습니다.
그 어르신도 농협에 볼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농협으로 걸어갔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엄마이면서 누군가의 형님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랜 친구이며 이웃입니다.
농협 일을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농협 업무를 마치자 엄마는 허리 통증이 더 심해졌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 가서 통증 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두 번을 쉬어가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엄마를 병원에 모셔다드린 뒤 나는 그동안 필요한 볼일을 보기로 했습니다.
슈퍼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엄마가 사 오라고 하신 참깨도 샀습니다. 약국에 들러 약도 사고 다른 일도 처리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생활입니다.
시골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엄마와 농협에 갔다가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장을 보며 부탁받은 물건을 챙기는 일.
그런데 어느새 나는 이런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오늘 나의 생활을 통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운동하러 나왔다가 마을회관 앞에 앉았습니다
오후 5시쯤 엄마가 답답하셨는지 운동을 해볼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던 아침과는 전혀 다르게 햇살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엄마는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운동은 못 하겠다.”
결국 엄마는 마을회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나도 엄마 옆에 함께 앉았습니다.
잠시 주변을 바라보던 엄마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없어.
마을이 적막강산이야.”
평소라면 몇 분이라도 보였을 텐데 그날은 지나가는 사람도, 밖에 나와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넓은 마을에 엄마와 나만 앉아 있는 것처럼 조용했습니다.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앞집 아주머니
나는 앞집 아주머니가 계신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앞집에 가보니 아주머니는 침대에 누워 계셨습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밖으로 나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주머니, 엄마 나왔어요.”
그러자 아주머니가 되물으셨습니다.
“네 엄마 나왔냐?”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가 지으시는 것과 비슷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천천히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습니다.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루.
누군가 밖으로 나오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하루.
누군가와 잠시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하루.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그 기다림이 하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에게 긴 하루가 외로운 이유
예전에 한 어르신이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강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엄마와 지내며 어르신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자녀들은 멀리 살고, 대중교통은 자주 오지 않으며, 허리와 무릎이 아파 혼자 멀리 나가기도 어렵습니다.
마을에 사는 사람도 줄어들고 함께 어울리던 이웃 중에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거나 세상을 떠난 분들도 계십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누워 있다가 누군가 불러주면 그제야 밖으로 나오는 생활.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이 긴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찾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말할 사람이 필요하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회복 32일차, 사람의 온기도 회복이 됩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여러 장면이 떠오릅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데 날파리를 피하려고 우산을 썼던 산책길, 허리가 아파 몇 번씩 쉬어가면서도 농협으로 향했던 엄마, 성당에 가는 이웃을 위해 기사님에게 대신 부탁하던 어르신, 엄마에게 “형님”이라고 인사를 건네던 이웃, 그리고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던 앞집 아주머니.
서로 다른 장면이었지만 그 안에는 모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걱정하고, 대신 부탁해주고, 안부를 물으며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아주 사소해 보입니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에게는 그 한마디가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회복을 위해 시골에 내려온 뒤 나는 몸을 쉬게 하는 것만이 회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배웁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는 시간,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주는 마음도 몸과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회복의 힘입니다.
회복 32일차.
오늘은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약이나 운동뿐 아니라 누군가의 부름 속에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한 줄
사람은 혼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이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갑니다.
함께 생각해보면 좋은 질문
- 오늘 내가 먼저 안부를 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 누군가 나를 불러주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졌던 순간이 있나요?
- 가까이 살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웃은 없는지요?
- 부모님의 외로움을 생활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나요?
- 누군가의 긴 하루를 짧게 만들어줄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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