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44일차입니다.
요즘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밤에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청하기도 하고, 에어컨을 켜놓고 자기도 합니다. 창문까지 열어놓고 자지만 아침 공기에는 약간의 시원함과 함께 꿉꿉함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하루를 가볍게 시작하기보다 몸까지 눅눅해진 듯한 느낌으로 아침을 맞았습니다.
아이들이 다녀가고 집에 손님도 계속 찾아오면서 아침 산책을 일주일 정도 쉬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시 산책길로 나섰습니다.
- 머리가 멍하고 몸이 무거워 강도를 줄인 아침 산책
- 계란 껍데기를 백일홍 주변에 놓는 엄마의 손길
- 보기 좋은 꽃밭과 건강한 노년에 필요한 시간
- 제가 떠난 뒤 혼자 지낼 엄마를 향한 걱정
머리가 멍한 날에는 걷기만 했습니다
날이 더워서인지 논과 들판에는 물안개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물안개가 반갑기는 했지만 몸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찌뿌둥했고 머리도 약간 멍하고 띵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푸놀치를 하지 않고 그냥 길만 걸었습니다.
무언가를 찾아 표현하기보다 몸의 상태를 살피며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걷기만 하고 돌아오니 집에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머리가 맑은 날도 있고 멍한 날도 있습니다.
회복하는 동안 이런 증상은 앞으로도 좋아졌다가 다시 불편해지기를 반복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일 정해놓은 만큼을 꼭 해내기보다 그날의 몸이 허락하는 정도를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오래 걷거나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걷고 자전거를 조금 타는 것으로 아침 운동을 마쳤습니다.
계란 껍데기 하나도 그냥 버리지 않는 엄마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계란 껍데기를 모아두는 종이봉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투 안에는 그동안 모아놓은 계란 껍데기가 가득했습니다.
엄마는 그것을 텃밭에 있는 나무 아래에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당에 있는 백일홍이 조금 약하고 튼튼하지 못해 보이니 그 주변에 부숴서 넣으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제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기어코 마당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계란 껍데기를 잘게 부순 뒤 백일홍 주변에 골고루 놓고 흙을 다독여주셨습니다.
제가 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지 못하고 직접 나서야 마음이 놓이시는 엄마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의 꽃밭이 저절로 이렇게 예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기 좋은 꽃밭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꽃밭에 풀이 자라면 “나간 집 같다”고 하시며 바로 풀을 뽑으십니다.
꽃이 잘 자라지 않으면 거름을 주고, 자리가 맞지 않는 것 같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습니다. 꽃이 쓰러지지 않도록 살펴주고 주변의 흙도 다독여줍니다.
꽃이 피어 있는 모습만 보면 그저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꽃 한 송이가 제자리를 지키기까지는 엄마의 손길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풀을 뽑고, 거름을 주고, 자리를 옮기고, 물을 주며 기다린 시간이 모여 지금의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엄마는 보기 좋은 꽃밭을 만들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왔습니다.
그런 노력 없이 아름다운 꽃밭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건강한 노년을 준비하는 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꽃밭을 바라보다 보니 지금 제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건강한 노년을 살아가기 위해 시골에 내려와 몸을 살피고 있습니다.
아침에 산책하고, 몸이 무거운 날에는 운동량을 줄입니다. 자연을 바라보고, 잘 먹고, 쉬어야 할 때는 쉬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머리가 멍하고 몸이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회복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꽃밭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꽃이 잘 자랄 때도 있고 시들할 때도 있습니다. 자리를 옮겨줘야 할 때도 있고, 그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행복도, 즐거움도, 건강도 어느 날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눈에 띄는 변화가 없더라도 매일의 작은 돌봄이 쌓이면 언젠가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노각무침과 호박볶음으로 차린 점심
점심에는 며칠 전 농협마트에서 사 온 노각을 다시 손질해 무쳤습니다.
호박은 양파를 썰어 함께 볶았습니다.
더운 날에는 거창한 음식보다 텃밭과 가까운 곳에서 구한 재료로 만든 반찬이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노각무침과 호박볶음을 차려 엄마와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엄마가 드실 음식을 살펴보고 국이나 반찬을 준비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엄마가 혼자서도 잘 지내실 수 있을까.
더운 날 식사는 잘 챙겨 드실까. 몸이 아픈데도 또 무리해서 밭과 꽃밭의 일을 하지는 않을까.
아직 떠날 날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에서는 벌써 걱정과 염려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일상이 더 자세히 보입니다. 그래서 엄마 곁을 떠나는 일이 전보다 더 걱정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 새끼가 있는지 밖에 나가봐야겠다”
요즘 날씨는 정말 덥습니다.
엄마도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심심하고 무료하셨던 모양입니다.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사람 새끼가 있는지 밖에 나가봐야겠다.”
누구라도 밖에 나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는지 한번 둘러보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사람 새끼가 하나도 없어.”
너무 더워서 밖에 나오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요즘은 휴가철이라 다른 집들도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와 집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동네가 더 조용합니다.
엄마는 심심한지 집 안과 밖을 오가셨습니다.
나갔다가 금세 들어오고, 다시 밖을 살펴보다가 또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아무도 보이지 않는 여름날의 동네는 더 무료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회복에도 꽃밭처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복 44일차.
오늘은 머리가 조금 멍하고 띵해 오랜만에 나간 산책길에서 걷기만 했습니다. 집에 일찍 돌아와 자전거로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계란 껍데기를 부숴 백일홍 주변의 흙을 다독였고, 노각무침과 호박볶음으로 점심을 차렸습니다.
오후에는 심심한 엄마가 동네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러 나갔다가 금세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별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하루에도 여러 마음이 오갔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싶은 마음, 엄마의 꽃밭을 돕고 싶은 마음, 제가 떠난 뒤 엄마의 생활을 걱정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엄마의 꽃밭이 저절로 아름다워진 것이 아니듯, 제 회복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몸이 무거운 날에는 속도를 늦추고, 증상이 있는 날에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잘 먹고, 쉬고,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이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꽃밭의 흙을 조금씩 다독이듯 저도 제 몸과 마음을 천천히 돌보고 있습니다.
건강한 삶도 매일 나를 살피고 돌보는
작은 노력 속에서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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