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47일차|두려웠던 냇물에 다시 발을 담갔습니다

어느새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47일차입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아침 산책을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내리막에서도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고, 산책할 때마다 바라보기만 했던 냇가로 내려가 물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그 냇가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수영하고 민물새우와 다슬기를 잡았던 즐거운 기억이 있는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수문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던 두려운 기억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오늘의 회복은 오래된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안전한 곳에서 다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회복 이야기
  • 자전거 내리막길에서 생각한 삶의 중심
  • 어린 시절 수문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던 기억
  • 두려웠던 냇가에 다시 발을 담근 작은 용기
  • “여기만 더”를 반복하며 알게 된 엄마의 마음

자전거 내리막길에서도 중심이 필요합니다

제가 자전거를 타는 길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오르막에서는 힘을 주어 페달을 밟아야 하지만, 내리막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자전거가 빠르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내리막길이 꼭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속도가 붙을 때 조금만 방심하면 중심을 잃을 것 같고, 가끔은 발판에서 발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얼른 속도를 줄이고 다시 중심을 잡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우리 삶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언가 쉽게 풀리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계속 잘될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처럼 자신감이 생깁니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빠르게 내려갈 때와 같습니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속도가 붙고 목적지에 금방 도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변을 살피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전거가 흔들리듯 삶에서도 관계나 일의 균형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오르막길에서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지만, 오히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내리막길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방심하기 쉽습니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산책할 때마다 바라보기만 했던 냇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오늘은 작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산책길을 지날 때마다 냇가를 바라보며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 아래로 한번 내려가 볼까?’

처음에는 내려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을 찾는 것도 귀찮아 그냥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냇가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자꾸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이 보이기 시작하니 내려가 보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졌습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조심스럽게 냇가로 내려갔습니다.

냇가에는 어린 시절의 여름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여름이면 냇가에서 정말 많이 놀았습니다.

친구들과 수영도 하고 민물새우도 잡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민물새우를 ‘질롱개’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지역에서 사용하던 사투리였을 것입니다.

돌을 들춰 다슬기도 잡았고 민물조개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처럼 특별한 물놀이 시설이 없던 시절, 냇가는 동네 아이들의 수영장이자 놀이터였습니다.

물속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숨어 있는지 찾고,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습니다.

즐거운 기억이 많은 곳이지만 제게는 무서운 기억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수문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던 기억

초등학교 4학년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수영하며 놀았는데, 그곳은 물이 깊고 가까이에 수문이 있었습니다.

잠시 방심한 순간 물살에 휩쓸려 수문 쪽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습니다.

다행히 근처에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동네 오빠가 있었습니다. 그 오빠의 도움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두려움은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냇가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과 함께 그날의 무서웠던 순간도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오늘 냇가로 내려가는 일이 제게 작은 용기가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다시 물에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냇가로 내려간 저는 물의 흐름과 주변을 살핀 뒤 가장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발을 담가보았습니다.

조금 무서울 것 같았지만 막상 발을 담가보니 별것 없었습니다.

차가운 물의 감촉이 발끝으로 전해졌고 저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사고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날의 기억도 여전히 제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위험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안전한 자리에서 물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용기란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알고도 안전한 범위 안에서 한 걸음 내딛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는 오랫동안 바라보기만 했던 냇가로 내려가 다시 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계곡이나 하천은 수심과 물살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으며 수문 주변은 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물에 들어갈 때는 안전한 장소인지 확인하고, 혼자 깊은 곳이나 수문 근처에 접근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을 주다가 풀까지 뽑기 시작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여기저기에서 농작물에 물을 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 텃밭에도 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뒤 생강과 부추, 그 주변에서 자라는 들깨에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주고 나니 주변의 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엄마가 뽑기 전에 내가 먼저 뽑아버려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풀만 조금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를 뽑고 나니 바로 옆에 있는 풀이 보였습니다.

‘여기만 더’ 하고 그곳의 풀을 뽑으면 또 다른 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기까지만’ 하면서 제 손은 계속 풀을 향해 갔습니다.

얼굴과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도 멈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엄마가 풀을 뽑을 때 아무리 들어가자고 해도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엄마도 아마 계속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만 더 뽑고.’

그 ‘여기만’이 계속 이어지면서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오늘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았습니다

물을 주고 풀까지 뽑고 나니 혼자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했고, 두려웠던 냇가에 내려가 물에 발도 담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텃밭에 물을 주고 풀까지 뽑았습니다.

그 정도면 오늘 할 일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꽃밭을 바라보니 수국이 더위에 타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꽃들도 시들시들하고 흙은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다시 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엉덩이 의자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제가 꽃밭에 물을 주고 있으니 엄마가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제가 물을 주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엉덩이 의자를 가지고 와 앉으시더니 자꾸만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 물을 더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물을 주고 엄마는 옆에 앉아 꽃밭을 살폈습니다.

그렇게 꽃밭 전체에 물을 주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침에 텃밭에서 땀을 흘렸는데 오후에도 다시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매일 꽃밭과 텃밭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지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보기에는 작은 꽃밭이지만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시든 꽃을 살피는 일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땀을 씻어내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물을 다 주고 집에 들어와 땀에 젖은 몸을 씻었습니다.

씻고 나오니 몸이 시원해지고 기분도 참 좋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동안 몇 번이나 땀범벅이 되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자전거를 타며 삶의 중심을 생각했고, 오랫동안 두려웠던 냇가에 다시 발을 담갔습니다.

엄마보다 먼저 풀을 뽑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풀 앞에서는 저도 엄마와 똑같이 “여기만 더”를 반복했습니다.

오후에는 시들어가는 꽃에 한 시간 동안 물을 주었습니다.

회복 47일차.

오늘의 회복은 몸을 쉬게 하는 모습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 몸을 움직여 자전거의 중심을 잡고, 오래된 두려움 앞에서 작은 용기를 내고, 말라가는 식물에 물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몸을 많이 움직인 날에는 충분히 쉬는 일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삶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됩니다.

오르막에서는 포기하지 않을 힘이 필요하고, 내리막에서는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곳을 다시 마주할 때는 한꺼번에 깊이 들어가는 용기보다 안전한 곳에서 발끝만 담가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저는 자전거 위에서도, 냇가에서도, 텃밭에서도 제 중심을 다시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 줄
용기는 두려움이 사라진 뒤 내딛는 큰 걸음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안전한 곳에 발끝을 살며시 담가보는
작은 시작입니다.
이 글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한 글입니다. 수술 후 운동 능력과 회복 상태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자전거 타기나 야외활동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고 담당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조절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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