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산책길에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냇가를 한참 바라보았어요. 예전에는 물이 넓게 흐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냇가 가운데까지 수초가 자라 있었어요.
물이 흐르는 부분은 검은 길처럼 남아 있고, 수초는 그 사이사이에 작은 섬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냇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전에 넓었던 물길이 수초 사이로 여러 갈래 나뉘어 흐르는 모습에 가까웠어요.
어린 시절의 냇가를 다시 바라보며 댐 이후 달라진 물길과 고향의 세월을 생각해보았어요.
수초로 좁아진 어린 시절의 냇가
이곳에서 생활하기 전에도 가끔 엄마를 보러 올 때마다 냇가에 수초가 자라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왜 관리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냇가가 왜 변했는지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냇가에 수초가 자라는 이유를 이야기하다 보니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댐이 생긴 뒤 물의 흐름도 달라졌을까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우리 동네 위쪽에 작은 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후 이곳에 큰 댐이 생겼어요. 지금은 우리 집에서도 바라보일 만큼 가까운 곳에 댐이 있어요.
댐이 생기면서 물이 흐르는 속도와 양도 예전과 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확한 원인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흙과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수초가 자라기 시작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물 가장자리에서 자라던 식물이 흙을 붙잡고, 그곳에 다른 식물이 자라면서 조금씩 물길 안쪽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르고요.
큰비가 내리면 지금 풀이 자라는 곳까지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원래 하천의 폭은 여전히 넓은데 평소에 물이 흐르는 길만 좁게 남은 것일 수도 있어요.
냇가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어요.
세월만큼 물길을 좁히고,
그 빈자리에 풀을 키우고 있었어요.
물제비를 뜨고 돌탑을 쌓던 곳
어린 시절에는 이 냇가에서 친구들과 참 많이 놀았어요.
평평한 돌을 찾아 물 위로 던지며 물제비를 뜨고, 물놀이를 하다가 젖은 옷은 커다란 돌 위에 펼쳐놓고 말렸어요. 돌을 하나씩 쌓아 돌탑을 만들기도 했고요.
민물새우와 다슬기를 잡고 민물조개를 찾으며 하루가 저무는 줄도 몰랐어요.
그때의 저에게 이곳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었어요. 물속으로 뛰어들어 놀고, 돌을 줍고, 친구들과 웃던 생활의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냇가 앞에 멈춰 서서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고 있어요. 같은 장소인데 어린 시절에는 뛰어들어 놀던 냇가였고, 지금은 잠시 서서 지나온 세월을 바라보는 풍경이 되었어요.
“언니, 아직도 안 갔어?”
오늘 산책길에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동생도 만났어요. 지금은 이곳에 살지 않고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동생이에요.
저를 본 동생이 반갑게 물었어요.
“언니, 아직도 안 갔어?”
“응, 조금 더 쉬다가 가려고.”
그러자 동생이 말했어요.
“언니 어머님도 혼자 사시는데 언니도 여기 와서 살아. 그러면 엄마도 좋고 언니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동생은 자신도 나중에 이 동네에 집을 짓고 살려고 땅을 사두었다고 했어요.
“한 살 한 살 먹으니까 고향이 좋은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며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릴 때는 고향을 떠나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다시 고향을 생각하게 되나 봐요.
익숙한 산과 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회복을 위해 잠시 내려왔지만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향의 삶을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게 돼요.
더위에 감도 빨갛게 익어가요
요즘은 정말 더워도 너무 더워요.
감나무에 달린 감은 이제 조금씩 성장해야 할 때인데 벌써 붉게 익은 감들이 보여요. 밭에 있는 여러 작물도 더위를 견디기 힘든지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어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 올해는 감 값이 비싸겠어. 어제 뉴스에서도 감이 더위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하던데.”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작년에도 그랬어. 작년에도 감이 익고 이렇게 더웠어.”
엄마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지난해에는 제가 농작물과 날씨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더운 날이면 그저 덥다고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감나무와 들깨, 토란과 논의 벼를 바라보며 날씨가 농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금씩 살펴보게 돼요.
같은 풍경도 관심을 두고 바라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요.
황새는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많아졌어요
요즘 산책을 하며 또 하나 달라진 점을 발견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논에 그렇게 많던 황새들이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아요. 벼가 많이 자라서 논에 들어가 벌레를 잡아먹기가 힘들어진 것 같아요.
대신 요즘에는 비둘기가 많이 보여요.
“엄마, 황새는 없어지고 비둘기가 많아.”
제 말을 들은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이제 참깨를 수확할 때가 돼서 그래. 비둘기들이 어떻게 알고 와서 깨를 다 빼먹어. 비둘기 때문에라도 빨리 깨를 베어야 해.”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새들도 계절과 농사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어요. 논에 먹을 것이 많을 때는 황새가 찾아오고, 참깨를 수확할 때가 되면 비둘기가 찾아와요.
사람보다 먼저 먹이가 있는 곳을 알아차리고 찾아오는 모습이 참 신기했어요. 자연의 먹이사슬은 참 오묘한 것 같아요.
우리의 삶도 자연과 닮아 있어요
자연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지만, 누군가는 그 사람의 약한 부분을 찾아 괴롭히거나 이용하기도 해요.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의 삶과 닮은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어요. 누군가의 약점을 이용하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익숙했던 고향을 다시 알아가는 중이에요
회복을 위해 시작한 아침 산책이지만 요즘 저는 길을 걸으며 제 몸만 살피는 것은 아니에요.
어린 시절의 냇가가 어떻게 변했는지 바라보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요. 더위에 지친 감나무와 곡식을 살피고, 논에서 보이지 않게 된 황새와 참깨밭을 찾아온 비둘기도 관찰해요.
오랫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고향인데 관심을 두고 바라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참 많아요.
냇가에 수초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왜 관리하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기만 했던 제가 이제는 물의 흐름이 왜 달라졌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회복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과정인지 모르겠어요.
몸이 왜 예전 같지 않은지 걱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금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는 일이에요.
당장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변화한 몸을 이해하면서 지금의 저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오늘은 어린 시절의 냇가를 바라보다 그곳에서 세월을 만났어요. 냇가도 변했고, 고향도 변했고, 그곳을 바라보는 제 마음도 달라졌어요.
하지만 냇물은 수초 사이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 흐르고 있었어요. 저도 지금의 몸에 맞는 길을 찾아 천천히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오늘의 한 줄
냇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달라진 물길로 흐르고 있었고, 저도 변화한 몸 안에서 다시 살아갈 길을 찾고 있어요.
이 글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한 글이에요. 회복 과정과 증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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