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시골은 벌써 분주했어요 -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52일차

시골의 새벽은 조용할 것 같지만 이곳의 새벽은 하루 중 가장 활기가 넘치는 시간이에요.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면 엄마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요. 그렇다고 일어나자마자 대문을 열고 나가시는 것은 아니에요. 안마의자를 한 바퀴 돌리시고 우유도 한 잔 드신 뒤에야 밖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들려요.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일기 52일차
오늘은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농촌의 풍경과 손주들에게 줄 갈대비를 만드는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새벽 산책을 시작한 87세 엄마

요즘 엄마는 새벽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세요. 날이 덥다는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으셔서 제가 몇 번이나 새벽에라도 걸으시라고 부탁했어요. 몇 번의 부탁 끝에 시작한 새벽 산책이에요.

오늘도 엄마가 동네를 걷다가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것 같았어요. 엄마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집 안까지 들려왔어요.

시골의 새벽은 벌써 분주했어요

저도 아침 산책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어요.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와 앞집 아주머니,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아주머니까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요. 이른 새벽인데도 모두 하루를 시작한 모습이었어요.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농촌 어르신들에게는 하루를 여는 중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서로 잘 잤는지,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밭과 논의 상태는 어떤지 이야기하며 안부를 확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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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와 농업용 드론이 하루를 시작해요

엄마와 아주머니들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한 밭에서 농기계로 밭고랑을 만들고 있었어요. 반듯하게 만들어지는 밭고랑을 보니 무엇을 심으려고 준비하는 것인지 궁금해졌어요.

또 조금 걸으니 부부가 함께 들깨밭에 물을 대고 있었어요.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 작물들이 물을 얼마나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약을 주거나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경운기에 약통과 물통을 싣고 각자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어요.

경운기 소리가 멀리서부터 덜덜거리며 들려왔어요. 도시에서는 시끄럽다고 느꼈을 소리인데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정겹게 들려요.

이제 누군가 밭으로 일을 나가는구나, 농촌의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알려주는 소리 같아요.

조금 더 걷자 한 농부가 드론으로 논에 약을 주고 있었어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사람이 직접 무거운 약통을 메고 논과 밭을 다니며 약을 주었어요. 지금은 드론이 넓은 논 위를 오가며 일을 하고 있어요.

농촌에는 오래된 경운기 소리도 있고 최신 농업용 드론이 움직이는 소리도 있어요. 오래된 농사 방식과 새로운 기술이 한마을의 아침 안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었어요.

풀 내음과 꽃 내음이 아침을 알려줘요

산책길의 풀숲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어요. 냇가의 물도 소리를 내며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어요.

풀 내음과 꽃 내음도 함께했어요. 농부들이 예초기로 베어놓은 풀이 서서히 말라가며 내는 냄새도 났어요.

말라가는 풀 냄새는 싱싱한 풀 냄새와는 또 달라요. 햇빛을 머금은 풀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있어요. 그 냄새까지도 농촌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길가에는 보라색 나팔꽃도 피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나팔꽃이 입을 크게 벌리고 나팔을 불어주는 것 같았어요.

“이제 모두 일어나세요.
농촌의 하루가 시작됐어요.”

경운기 소리와 새소리, 물소리에 나팔꽃의 나팔 소리까지 더해지니 아침 산책길이 더 흥겨워졌어요.

밭두렁 풀숲에서 익어가는 호박

밭두렁과 논두렁에서는 호박이 익어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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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부러 예쁘게 자리를 잡아준 것도 아닌데 넝쿨 사이에 호박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어요.

풀이 잔뜩 자란 곳에서도 호박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열매를 키우고 있었어요. 뜨거운 여름을 견디면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모습이 참 기특하게 보였어요.

고추밭의 고추도 붉게 익어가고 있었어요. 더위에 잎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고추는 자기 몫을 하듯 매달려 있었어요.

풀숲에서 갈대를 뽑는 아주머니

한참을 걷고 있는데 풀이 무성한 곳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어르신이 보였어요.

멀리서 보니 풀숲에 몸을 숙이고 계셔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수 없었어요. 궁금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물었어요.

“아주머니, 거기서 뭐 하세요?”

“갈대 뽑아.”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저에게 갈대가 많이 자란 곳을 아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수고하시라는 인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한두 발짝 걸어가다 보니 아주머니가 풀숲에 앉아 갈대를 뽑고 계신 모습이 더 잘 보였어요.

갈대를 어디에 쓰려고 뽑는지 궁금해 다시 여쭤보았어요.

“갈대로 빗자루 만들어서 파시려고요?”

“아니야. 이거 만들어서 손주들 주려고.”

아주머니는 갈대로 빗자루를 만들어 손주들에게 나누어주신다고 했어요. 한 번 만들어놓으면 5~6년은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풀숲에 앉아 갈대를 한 줄기씩 뽑는 일이 단순히 빗자루를 만드는 일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손주들이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좋은 갈대를 고르고, 직접 다듬고 묶어주는 할머니의 마음까지 함께 담기는 일이었어요.

어린 시절 사용했던 싸리비와 갈대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 시절의 기억도 떠올랐어요.

제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다양하고 편리한 청소 도구가 많지 않았어요. 산이나 들에서 재료를 구해 싸리비를 만들고 갈대비도 만들어 사용했던 것 같아요.

마당을 쓸 때는 싸리비를 사용하고, 집 안이나 다른 곳을 쓸 때는 용도에 맞는 비를 사용했어요.

그때는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갈대를 직접 뽑아 빗자루를 만드는 모습이 낯설고 귀하게 보여요.

시대가 변하면서 더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졌지만 자연에서 재료를 구하고 손으로 생활 도구를 만들어 오래 사용하던 지혜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곳에는 아직 그 방법을 기억하고 손주들에게 나누어주는 어르신이 계셨어요.

이곳의 새벽에는 오래된 삶의 방식이 남아 있었어요.

씻지도 않고 노트북 앞에 앉았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오늘 만난 풍경들이 자꾸 생각났어요.

새벽부터 동네를 걷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주머니들, 밭고랑을 만드는 농부, 들깨밭에 물을 대는 부부, 논 위를 날아다니던 드론이 떠올랐어요.

경운기에 약통과 물통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과 풀숲에 앉아 손주들에게 줄 갈대를 뽑던 아주머니의 모습도 마음에 남았어요.

새소리와 물소리, 풀 내음과 꽃 내음, 말라가는 풀 냄새까지 생생했어요.

평소 같으면 산책을 마치고 먼저 씻었을 텐데 오늘은 이 여운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노트북 앞에 앉았어요.

지금 느낀 것을 잊기 전에 얼른 글로 남기고 싶었어요.

회복하며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요

몸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아침 산책이었어요.

처음에는 얼마나 걸을 수 있는지, 머리가 멍하지는 않은지, 어지럽지는 않은지 제 몸의 상태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제 몸 밖의 풍경들이 조금씩 더 많이 들어와요.

엄마의 발소리가 들리고, 농부들의 경운기 소리가 정겹게 느껴져요. 새소리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풀과 꽃의 냄새를 맡아요. 풀숲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기도 해요.

어쩌면 회복은 내 몸 안에만 머물던 시선이 다시 세상을 향해 넓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회복 52일차

시골의 새벽은 조용하지 않았어요. 사람도, 새도, 물도, 풀과 꽃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어요.

그 활기찬 풍경 속에서 저의 하루도 천천히 열리고 있었어요.

오늘의 한 줄

회복은 다시 세상의 소리를 듣고, 풍경을 마음에 담아 잊기 전에 기록하고 싶어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 글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한 글이에요. 회복 과정과 몸의 변화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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