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참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새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61일차가 되었어요.
요즘은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휴양림에 다녀와요.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밭이 있던 그 길에서 힘들었던 기억과 달콤했던 추억을 다시 만나고 있어요.
오늘은 끈질기게 따라오는 날파리와 실랑이를 벌이며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온 사람인지 생각해보았어요.
어린 시절 리어카를 밀며 걸었던 길을 다시 달리며, 열심히 살아온 삶과 이제 필요한 쉼을 생각한 아침입니다.
어느새 회복 61일차가 되었어요
이곳에서 참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벌써 회복 61일차가 되었어요.
요즘은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에 있는 휴양림에 다녀와요. 지금은 휴양림으로 편입된 곳이지만, 제가 어린 시절에는 우리 가족이 농사를 짓던 밭이 있었어요.
어린 눈에는 꽤 넓은 밭으로 보였는데 실제로 얼마나 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곳에는 대추나무가 심겨 있었고 밭두렁에는 감나무도 있었어요.
대추나무 사이의 빈 땅에는 콩과 깨도 심었던 것 같아요. 세월이 오래 흐른 만큼 기억도 이제는 선명하기보다 듬성듬성 남아 있어요.
리어카를 밀며 걸었던 힘든 길
어린 시절에는 그 밭까지 가는 길이 참 힘들었어요.
그때는 농사에 필요한 짐을 리어카에 싣고 다녔어요. 오빠가 앞에서 끌고 저는 뒤에서 밀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10분 이상 걸리는 곳이에요. 어린아이가 무거운 리어카를 밀며 그 먼 길을 걸어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래서인지 그 밭으로 가던 길은 제게 좋은 기억보다 힘들고 싫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어요.
힘든 길에도 달콤한 기억은 있었어요
그렇다고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산속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새소리가 들렸고, 길가에 열린 산딸기와 오디를 따 먹기도 했어요.
가끔은 남의 집 나무에 열린 복숭아와 앵두, 살구에도 슬쩍 손을 뻗었던 것 같아요.
리어카를 밀며 걷는 일은 힘들었지만 그 길에서 만났던 새소리와 달콤한 열매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같은 길 안에 힘든 기억과 좋은 기억이 함께 들어 있었던 거예요.
기억은 지나간 사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그저 힘들기만 했던 길을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지나며, 그 안에 숨어 있던 달콤한 장면까지 하나씩 꺼내 보고 있어요.
날파리와의 두 번째 대결
며칠 전 자전거를 타고 휴양림에 가다가 날파리 때문에 꽤 고생했어요. 얼굴과 눈앞으로 계속 달라붙는 바람에 자전거를 타는 내내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서 오늘은 단단히 준비했어요.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눌러썼어요. 햇빛을 가리는 마스크도 착용하고 바람막이까지 입었어요. 이 정도면 날파리가 접근할 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날파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요.
단단히 준비한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눈앞에서 알짱거렸어요. 귓가에서는 쉬지 않고 윙윙거리며 존재를 알렸어요.
그래도 저는 굴하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어요.
그런데 날파리도 굴하지 않았어요.
제가 달리면 날파리도 따라오고, 제가 속도를 내면 날파리도 더 열심히 달려드는 것 같았어요. 오늘 아침 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저와 날파리의 조용하지만 끈질긴 대결장이 되었어요.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들
날파리와 실랑이를 벌이며 자전거를 타다 보니 문득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꼭 날파리처럼 귀찮고 싫은 것만은 아니에요.
어떤 날에는 바람이 좋아서 자전거를 멈추고, 어떤 날에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멈춰 서요. 매미 소리를 녹음하고 싶어 자전거에서 내릴 때도 있어요.
나쁜 것은 우리를 방해하고, 좋은 것은 우리를 유혹해 잠시 샛길로 데려가요.
그렇다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것일까요.
날파리는 귀찮지만 제게 삶을 생각하게 했고, 아름다운 하늘은 가던 길을 멈추게 하지만 마음을 쉬게 해주었어요.
결국 좋고 나쁨은 언제나 분명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봐요.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 방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꼭 필요한 쉼이 되기도 하니까요.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달렸을까요
계속 달려드는 날파리에게도 굴하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저를 보며 또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까지 계속 달리고 있는 걸까?’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돌아보니 저는 지금까지 앞만 보며 꾸준히,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어요.
힘든 일이 생겨도 멈추기보다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쪽을 선택했어요.
어쩌면 이제 조금 쉬어가라고 몸이 아팠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회복을 위해 시골에 머무는 지금도 저는 아침이면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날파리와 싸우면서도 계속 페달을 밟고 있어요.
아직도 저는 멈추는 것보다 달리는 일에 더 익숙한 사람인가 봐요.
내리막길에서는 날파리가 사라졌어요
신기하게도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날파리가 보이지 않았어요.
날파리가 맞바람과 자전거의 속도를 견디지 못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내리막의 시원한 바람과 속도에 집중하느라 날파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자전거를 멈추는 순간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날파리가 다시 나타났어요.
그 모습을 보며 삶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정신없이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걱정과 불안이 멈추는 순간 다시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위해 더 바쁘게 움직이고,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계속 달리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회복은 걱정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무조건 빠르게 달리는 일이 아닐 거예요.
잠시 멈췄을 때 다시 나타나는 마음까지 바라보고, 그 마음과 함께 천천히 쉬어가는 연습인지도 모르겠어요.
열심히 가는 것만큼 쉬어가는 일도 필요해요
오늘도 저는 날파리의 방해를 받으면서 휴양림을 향해 열심히 자전거를 탔어요.
어린 시절 힘들게 리어카를 밀며 걸었던 길을 이제는 제 힘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고 있어요.
나쁜 기억이라고 생각했던 길에서 새소리와 산딸기, 오디의 달콤한 기억도 다시 만났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저는 지금까지 참 꾸준히 달려온 사람이었어요. 힘들어도 멈추지 않았고, 방해물이 나타나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 성실함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열심히 달리는 것만이 잘 살아가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날파리 때문에 잠시 속도를 늦추어도 괜찮고, 예쁜 하늘을 보기 위해 샛길로 빠져도 괜찮아요.
때로는 자전거를 세우고 바람과 매미 소리를 느끼며 쉬어도 괜찮아요.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잘 가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한 줄
나는 지금까지 참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는 멈추는 순간도 길의 일부라는 것을 배우며 천천히 가보려 한다.
이 글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한 글이에요. 회복 속도와 활동량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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