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게 묻다 ㉓ 우리는 왜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울까? -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나는 법

📖 삶에게 묻다 3기
삶의 질문을 통해 마음과 관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성찰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왜 내 실수는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할까요?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왜 나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마음속에서 과거의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꺼내봅니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오늘의 내가 다시 심판합니다.

"나는 왜 나 자신에게 이렇게 가혹한 걸까?"

오늘 「삶에게 묻다 ㉓」에서는 후회와 자책이 왜 오래 남는지, 그리고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

어느 날 한 여인이 현자를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오래전 자신이 했던 선택을 이야기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다른 사람은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자신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조금만 더 잘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할수록 제가 미워집니다."

현자는 잠시 여인을 바라보다 물었습니다.

"그 일이 언제 있었느냐?"

"십 년 전입니다."

현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같은 사람이냐?"

여인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습니다.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고요."

그러자 현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왜 오늘의 지혜로 십 년 전의 너를 심판하고 있느냐?"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왜 자신에게 더 가혹할까?

친한 사람이 자신의 실수를 털어놓으면 우리는 비교적 따뜻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때는 최선을 다했잖아."
"너무 자책하지 마."

그런데 똑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면 말이 달라집니다.

"왜 그것밖에 못했어?"
"조금만 더 생각했어야지."
"나는 왜 항상 이럴까?"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와 위로를 건네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장 엄격한 판사가 되곤 합니다.

오늘의 지혜로 과거의 나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과거를 돌아보면 잘못된 선택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경험도 달랐고,
상황도 달랐으며,
마음의 여유도 달랐습니다.

지금은 답이 보이지만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때 한 가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때 내가 가진 경험과 판단으로 선택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후회와 자책은 다릅니다

후회와 자책은 비슷해 보이지만 마음에 미치는 방향은 다릅니다.

후회는 말합니다.

"다음에는 다르게 해보자."

하지만 자책은 말합니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후회는 행동을 돌아보게 하지만 지나친 자책은 사람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나는 잘못된 사람이다."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실수는 고치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 하나를 나라는 사람 전체의 가치와 연결하기 시작하면 다시 시작할 힘까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잘못을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용서라고 하면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책임을 피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은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태도에 가깝습니다.

  • 내가 잘못한 부분은 인정합니다.
  • 필요하다면 사과하고 책임을 집니다.
  •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지 생각합니다.
  • 하지만 그 잘못 하나로 내 삶 전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책임은 인정하되 나 자신까지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자기용서의 중요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넘어진 아이에게는 어떻게 말할까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넘어졌다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 또 넘어졌어?"
"너는 걷는 데 소질이 없구나."

대신 손을 내밀어 줍니다.

"괜찮아. 다시 일어나 보자."

아이는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결국 걷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우리는 자신에게 그 손을 잘 내밀어주지 못합니다.

한 번의 실패를 오래 기억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 꺼내 자신을 꾸짖습니다.

어쩌면 어른에게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나에게도 따뜻한 말이 필요합니다

가끔은 과거의 나를 한 사람처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서툴렀던 나,
두려웠던 나,
잘 몰랐던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잘못된 선택을 했던 나.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 사람에게 한마디 건네보는 것입니다.

"그때 많이 힘들었구나."

"잘하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았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잘 살아왔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위로는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에게 듣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미 했던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지나간 선택을 다시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바라보는 지금의 마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에서
"그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로,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에서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로 질문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질문이 달라지면 과거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생각해 볼 것

오래된 실수나 후회가 떠오를 때 다음과 같이 마음을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 사실과 자책을 구분하기 - 내가 한 행동과 나라는 사람 전체를 구분합니다.
  • 그때의 상황을 함께 바라보기 - 지금의 기준만으로 과거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 책임질 것이 있다면 책임지기 - 자기용서는 책임 회피와 다릅니다.
  • 배운 것을 현재에 적용하기 - 후회를 오늘의 변화로 연결합니다.
  • 나에게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기 - 실수한 나 역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삶에게 묻다

나는 아직도 과거의 어떤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경험과 지혜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만약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실수를 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주었을까?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은 바꿀 수 있습니다.

자기용서는 과거를 지워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와 손을 잡고 오늘을 다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 나는 아직 어떤 실수 때문에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가?
  • 그때의 나에게 지금 한마디를 해준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 그 경험을 통해 지금의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인가?
  • 이제는 나 자신에게 어떤 기회를 다시 주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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