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때를 내가 정할 수 있을까 - 나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

9월의 길가에서 만난 민들레와 토끼풀, 망초 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꽃이 때를 잘못 알고 피어난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기준으로 꽃의 시간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9월의 길가에서 만난 노란 민들레
이 글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은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정답은 아닙니다. 꽃마다 피어나는 시간이 다르듯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속도와 계절이 있습니다.

9월에 만난 민들레

오늘 아침 길을 걷다가 노란 민들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민들레가 지금도 꽃을 피우는 것이 맞나?”

내가 알고 있던 민들레는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초여름이면 대부분 지는 꽃이었습니다. 그래서 9월의 길가에서 만난 노란 꽃이 계절을 조금 늦게 따라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토끼풀이 보였습니다. 여름에 보았던 풍성한 모습과 달리 꽃이 작고 여려 보였습니다.

어디가 아팠던 것일까?
그럼에도 이렇게 꽃을 피워낸 것일까?

그 옆에는 망초류의 작은 꽃도 의연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꽃을 피우는 식물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계절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조금은 웃기고 또 대견했습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피었다고 해서 잘못 핀 꽃은 아닙니다

꽃들이 때를 잘못 알고 피어난 것일까

집으로 돌아와 민들레와 토끼풀, 망초의 개화 시기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민들레는 종류와 자라는 환경에 따라 9월까지 꽃을 피우기도 하고, 토끼풀과 망초류 역시 초가을에 만날 수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꽃들이 계절을 잘못 알고 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던 짧은 지식으로 꽃이 피어야 할 때를 정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봄꽃은 봄에만 피어야 한다.’
‘여름에 보았던 꽃이 가을까지 남아 있으면 어딘가 이상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식물도감의 범위 안에서 꽃을 바라보고 맞다거나 틀리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식물도감에 기록된 개화 시기는 자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모든 꽃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표는 아닐 것입니다.

꽃은 달력을 보지 않습니다.

자신이 뿌리내린 자리의 온도와 햇빛, 비와 바람을 견디며 피어날 수 있는 때에 꽃을 피울 뿐입니다.

작고 여리게 피었다고 해서 아픈 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도 정해진 때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람의 삶에도 보이지 않는 시간표를 만들어놓고 살아갑니다.

이 나이에는 취업해야 하고, 이때쯤에는 결혼해야 하며,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안정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거나, 아직도 방황하고 있으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바라보기도 합니다.

사람의 성격과 감정에도 기준을 적용합니다. 활발한 사람은 사회성이 좋다고 생각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힘든 일을 잘 참으면 어른스럽다고 말하면서도, 아프고 힘들다고 표현하면 약하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옳고 그름의 문제일까요?

어쩌면 내가 만들어놓은 규정과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 사람을 넣어본 뒤, 그 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상하다’거나 ‘틀렸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요.

나의 지식이 판단의 틀이 될 때

우리는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그 기준 덕분에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닙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이 있고 아직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늦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동안 견뎌온 시간이 있으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꽃들을 보며 먼저 ‘때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린 토끼풀을 보면서는 어디가 아팠던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사연까지 만들어주었습니다.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판단하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상대는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기준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삶을 미리 판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꽃마다 피어 있는 시간과 모습은 서로 다릅니다

늦게 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때에 피는 것

누군가는 일찍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여러 길을 돌아본 뒤에야 마음이 향하는 곳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픔에서 빠르게 일어서지만, 어떤 사람은 오래 쉬며 아주 천천히 다시 걸음을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견뎌온 무게가 다르며, 회복하는 속도도 다릅니다.

민들레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피었다고 해서 계절을 잘못 알고 핀 꽃은 아닙니다. 토끼풀의 꽃이 작고 여리다고 해서 아픈 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망초가 초가을까지 남아 있다고 해서 자신의 때를 놓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피어날 수 있는 만큼 피어 있는 것입니다.

조금 늦게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남들보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습니다.
크고 화려하지 않게 피어나도 괜찮습니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때가 아니라 내가 피어날 수 있는 때에 피어나면 됩니다.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기

오늘 아침에 만난 꽃들은 내게 조용히 질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맞다고 믿는 기준은
정말 모두에게도 맞는 것인가요?”

기준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 기준 때문에 눈앞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왜 아직 이것밖에 하지 못했을까”라며 정해진 시간표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합니다.

9월에 피어 있는 민들레와 여린 토끼풀, 의연한 망초 꽃을 바라보며 오늘도 하나를 배웁니다.

꽃이 계절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꽃의 시간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계절을 지나고 있으며, 각자에게 알맞은 시간에 자신의 꽃을 피웁니다.

지금 피어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직 피어나지 못했다면 그 또한 기다려줄 일입니다.
모든 생명에는 자신만의 때가 있으니까요.

모든 생명에는 자신만의 때가 있습니다

오늘의 마음 질문

나는 요즘 누구를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이때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삶의 시간표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가요?

자주 묻는 질문

9월에 민들레가 피는 것은 이상한 현상인가요?

반드시 이상한 현상은 아닙니다. 민들레는 종류와 지역의 기온, 햇빛 등 생육 환경에 따라 9월까지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토끼풀과 망초도 초가을에 볼 수 있나요?

토끼풀과 망초류 역시 지역과 환경에 따라 초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개화 시기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인 기준이며 모든 개체가 똑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경험과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판단이 들 때마다 ‘내가 아직 모르는 사정은 없을까?’라고 한 번 더 질문하면 상대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머물렀다면 오늘 만나는 사람과 나 자신을 정해진 기준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봐 주세요.

글 · 보라 강민주

해시태그

#마음식탁 #일상속마음 #마음공부 #심리이야기 #나만의속도 #삶의기준 #판단하지않기 #자기이해 #관계심리 #늦게피는꽃 #중년의삶 #보라강민주

댓글 쓰기

0 댓글

신고하기

프로필

이 블로그 검색

01

태그

이미지alt태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