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날씨가 흐렸던 아침, 집 근처 작은 동산에서 서로 다른 도토리 껍질을 만났습니다. 엄마, 딸, 할머니, 선생님이라는 여러 역할 속에서 왜 나는 늘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쳤는지 돌아봅니다.
도토리도 크기와 모양이 모두 다르고, 같은 계절을 지나는 나뭇잎도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듭니다. 사람 역시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느리고 헐렁하며 빈틈 있는 나도 온전한 나의 일부입니다.
오늘 나의 몸의 날씨는 흐림
오늘 아침 눈을 뜨니 나의 몸의 날씨는 흐림이었습니다.
머리는 띵하고 어지러움도 있어 한동안 침대에서 뒹굴거렸습니다. 몸이 가라앉으니 마음도 덩달아 움직이기 싫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누워 있는 것보다는 흙을 밟으며 조금이라도 걸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의 작은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이 동산에는 늘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운동을 합니다. 오늘도 맨발로 흙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길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수고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빗자루로 길을 쓸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그분이 누구인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깨끗하게 정돈된 길을 걸을 때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수고 덕분에 내가 편안하게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도토리가 아니라 껍질을 주워요”
길을 걷는데 오늘은 유난히 도토리의 커다란 껍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 이틀 걸어본 길도 아니고 해마다 올랐던 동산인데, 어제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 아침에는 자꾸만 눈에 띄었습니다.
나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도토리 껍질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지나가던 아주머님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쪽으로 가면 도토리가 많은 곳이 있어요.”
내가 도토리를 줍고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아니요. 저는 도토리가 아니라 껍질을 주워요.”
내 대답을 들은 아주머님은 씩 웃더니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나도 웃었습니다. 남들이 도토리 알맹이를 찾을 때 껍질을 주워 들고 좋아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재미있어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다 다르듯이 도토리도 종이 많아요”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앞에서 주운 것과 전혀 다른 모양의 커다란 도토리 껍질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침 그 아주머님이 다시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나는 손에 든 껍질을 보여드리며 물었습니다.
“이것도 도토리 껍질인가요?”
아주머님은 맞다고 하시며 이런 말씀을 건넸습니다.
“우리도 다 다르듯이
도토리도 종이 많아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문장은 한동안 마음속에 머물렀습니다.
길 위에 떨어진 도토리와 껍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았습니다.
어떤 껍질은 작고 단단했고, 어떤 것은 크고 넓었습니다. 표면이 매끈한 것도 있었고 거칠고 뾰족한 것도 있었습니다. 꽃처럼 가장자리가 펼쳐진 껍질도 있었고, 동그란 모자를 닮은 껍질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르듯 도토리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무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나는 왜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나를 채찍질했을까?
나는 늘 책임감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엄마로서 책임감이 있어야 했고, 딸로서 부모님을 살펴야 했습니다. 할머니로서 손녀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선생님과 상담사로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책임감은 내가 소중하게 지켜온 삶의 태도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임감은 내가 선택한 가치라기보다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해야 할 일을 생각했고, 지쳐도 누군가를 먼저 살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조금 느슨해지거나 실수하면 원래의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과 같은 모습으로 해내지 못하면 내가 부족해진 것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몸의 상태도 다르고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힘도 다릅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전과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책임지고, 똑같이 잘해내야 한다고 나를 몰아붙였을까요.
단풍이 든 잎도 모두 달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단풍이 든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잎 몇 장을 주워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식탁 위에 하나씩 펼쳐놓고 보니 잎들도 모두 달랐습니다.
어떤 잎은 전체가 노랗게 물들었고, 어떤 잎에는 초록빛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쪽만 붉게 변한 잎도 있었고 노란색과 갈색이 자연스럽게 섞인 잎도 있었습니다.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어도 물드는 속도와 색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하나를 두고 잘못 물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완벽한 모양이 아니어도, 색이 고르게 들지 않았어도 각자의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도토리 껍질과 단풍이 든 잎을 식탁 위에 함께 놓으니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나도 늘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조금 느슨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철저하게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빈틈이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사람을 한 가지 모습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나 역시 책임감 있는 사람이면서 때로는 맹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다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잘 돌보면서도 정작 내 마음을 놓칠 때가 있고, 잘 알고 있는 일 앞에서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모습이 나입니다.
책임감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단단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엄마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딸이나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해서 늘 모범적인 모습만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 맹해도 괜찮습니다.
빈틈이 생겨도 괜찮습니다.
몸이 힘든 날에는 충분히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모습 역시 지금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흐린 몸으로 나가 맑은 마음을 만났습니다
오늘 아침 나의 몸의 날씨는 분명 흐림이었습니다.
하지만 흐린 몸을 데리고 동산에 올라 흙을 밟고, 도토리 껍질을 줍고, 낯선 아주머님과 웃음을 나누는 동안 마음에는 조금씩 빛이 들어왔습니다.
몸이 맑아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면 회복한다는 것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달라진 몸과 속도를 인정하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는 것, 잘하던 나뿐 아니라 쉬고 있는 나와 조금 느린 나, 빈틈이 생긴 나까지도 내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회복일 수 있습니다.
도토리도 모두 달랐고 단풍이 든 잎도 하나같이 달랐습니다. 다른 것들이 함께 어울려 숲을 이루고 계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도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함께 있을 때 더 아름다운 거예요.
당신도 언제나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어요.”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여러 역할에서 잠시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려 합니다.
오늘의 마음 질문
나는 어떤 역할 때문에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고 있나요?
오늘만큼은 그 역할에서 힘을 조금 빼고, 빈틈 있는 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면 어떨까요?
자주 묻는 질문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왜 자신을 쉽게 다그칠까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하지만 역할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하게 여기면 쉬거나 실수했을 때 자신이 부족해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면 게으른 것일까요?
몸의 상태와 생활환경이 달라지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도 달라집니다. 현재의 몸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여러 역할에서 힘을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 하기보다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미뤄도 되는 일을 구분해보세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몸이 힘든 날에는 쉬는 것 역시 책임감 있는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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