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이제야 진짜 쉬기로 했다.
수술만 끝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이번 주에는 병원도 두 곳이나 다녀왔다. 계속되는 어지럼과 두통 때문에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쉬셔야 합니다."
"지금은 회복이 더 중요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수술 후에도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뇌동맥류 수술을 하고 나서도 나는 쉬는 법을 잘 몰랐다.
수술만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있던 걱정 하나를 해결했으니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몸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몸은 쉬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자꾸 괜찮다고 우겼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은 오만했고, 조금은 교만했던 것 같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나는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수술 후에도 책 두 권을 만들었다. 한 권은 이미 거의 마무리 단계였던 책이라 정리와 디자인 작업 정도만 남아 있었다.
또 한 권은 내가 푸놀치를 하며 내 마음을 돌보는 과정을 담은 『푸카시』였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냥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뇌 수술을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쉬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었던 시간
강의도 하고, 심리검사도 하고, 집단상담도 했다. 자격과정도 운영했다.
물론 예전처럼 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쉬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회복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버티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을 하고 나니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래서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강의도 다른 선생님께 부탁하고, 집단도 인계하고, 자격과정도 맡겼다.
그리고 이번 주 병원 두 곳에서 모두 쉬라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더 분명해졌다.
동생 행사 후, 엄마와 함께 내려온 길
마침 어제는 동생 집안 행사가 있었다.
50이 넘어 결혼한 동생, 그리고 나에게는 처음 생긴 제부와 함께하는 자리였다.
아직은 조금 낯설고 어색하다. 제부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행사를 마치고 엄마와 함께 이곳으로 내려왔다.
사실 집으로 갈 수도 있었다. 다시 해야 할 일들을 붙잡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의사들도 쉬라고 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이제는 정말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
차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문득 엄마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엄마는 80대 후반이다. 그런데도 딸이 아프다고 하니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시다.
내가 온다고 하니 며칠 전부터 전화를 하셨다.
"뭐 먹고 싶냐?"
"반찬은 뭐 해 놓을까?"
"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사실 나는 젊었을 때 상상도 못했다. 내가 5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엄마가 살아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아버지도 몸이 약하셨고 엄마도 늘 아픈 곳이 많으셨기 때문이다.
심리를 공부하던 30대 시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들이 엄마 이야기를 하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내가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 계실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세월은 참 신기하다.
어느새 나는 50대 후반이 되었고 엄마는 80대 후반이 되셨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프니 엄마가 나를 걱정한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약은 챙겨 먹었는지 몇 번씩 물어보신다.
딸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 눈에는 여전히 딸인가 보다.
엄마 텃밭에서 시작된 회복 1일차
오늘도 작은 일이 하나 있었다.
엄마가 텃밭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풀이 너무 많이 자랐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늘 호미와 장갑을 보관하는 곳에서 장갑과 호미를 꺼내 들고 밭으로 향했다.
그리고 말없이 풀을 뽑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나오셨다. 내가 밭에 있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긴팔 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서둘러 나오셨다.
"긴팔 입어야지."
"모기 물린다."
"그냥 들어가. 엄마가 할게."
그래도 조금 더 풀을 뽑았다.
그런데 모기가 달려들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힘도 들었다.
결국 나는 먼저 집으로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텐데 요즘은 풀 조금 뽑는 것도 쉽지 않다.
손톱 밑에 낀 흙이 고마웠던 날
집에 들어와 손을 씻는데 손톱 밑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
가만히 보니 엄마 장갑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는 워낙 알뜰하시다.
장갑도 버리지 않으신다. 빨아서 다시 쓰고, 찢어진 곳은 꿰매서 또 쓰신다.
아마 그 틈으로 흙이 들어간 모양이다.
손톱 밑에 낀 흙을 보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 아직 나에게는 내려올 수 있는 집이 있다.
- 반겨주는 엄마가 있다.
- 풀을 뽑을 정도의 체력도 아직은 남아 있다.
사실 요즘도 어지럽다. 두통도 있다.
머리가 맑은 날보다 멍한 날이 더 많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회복이라는 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엄마와 텃밭에 나가 풀을 뽑고, 함께 밥을 먹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
어쩌면 그런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 회복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엄마 텃밭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앞으로 한동안은 엄마와 함께 텃밭을 돌보며 지내보려고 한다.
무엇이 얼마나 자라는지, 나는 또 얼마나 회복되는지 천천히 기록해 보려고 한다.
아직 어지럼과 두통은 내 곁에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자연 속 바람에, 흙냄새에, 엄마의 밥상에 조금씩 조금씩 물러나기를 바란다.
오늘은 회복 1일차.
그리고 엄마 텃밭 출근 1일차이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 이 작은 텃밭 이야기와 회복 이야기를 종종 쓰게 될 것 같다.
무엇이 먼저 자랄지는 모르겠다.
엄마의 텃밭 채소가 먼저 자랄지, 아니면 내 몸과 마음이 먼저 회복될지.
다만 분명한 것은 오늘이 그 시작이라는 것이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지금 회복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버티고 있는 걸까?
- 내 몸이 쉬라고 보내는 신호를 나는 잘 듣고 있을까?
- 나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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