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4일째, 오늘은 텃밭 대신 시골 장날에 다녀왔다.
오늘은 회복 4일차다. 엄마 텃밭 출근 4일차라고 쓰고 싶었는데 오늘은 텃밭에 가지 못했다.
아침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오늘 장날인데 같이 장에 다녀오자."
그래서 오늘은 텃밭 대신 시장에 출근하는 날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시골, 그리고 오랜만에 탄 버스
내가 태어나 자란 이곳은 시골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버스가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에는 걸어서 학교에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
오히려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신기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버스가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엄마 말씀으로는 아침 6시대, 9시대, 11시대, 오후 2시대, 5시대 이렇게 버스가 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내려왔기 때문에 버스 시간을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수술 후에는 운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번에는 차 없이 내려왔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기로 했다.
마침 오늘이 이곳의 장날이기도 했다.
정류장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
정류장에 나가니 동네 어르신 한 분도 장에 가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함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 어릴 적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그때는 버스 한 대가 들어오는 일이 참 큰일처럼 느껴졌는데, 오늘은 그 버스가 나를 회복의 하루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버스 안에서 만난 시골 인심
버스는 우리가 가야 할 정류장까지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저곳 동네를 들러 갔다.
그런데 그 길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새로웠다.
버스 안에서는 어르신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셨다.
"어디 가요?"
"몸은 좀 어때?"
"병원은 다녀왔어?"
"밭일은 할 만해?"
서로의 안부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묻는다.
누가 아픈지, 누가 병원에 다녀왔는지, 누가 장에 가는지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 이것이 시골 인심이구나.
도시에 살다 보면 옆집 사람 이름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서로의 삶을 알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걱정한다.
조금은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관심과 정이 있었다.
장날 시장에서 매실을 샀다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매실을 사러 다녔다.
올해는 매실청을 담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매실을 파는지 기웃거리며 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튼실하게 생긴 매실을 발견했다.
엄마도 마음에 드셨는지 그 자리에서 매실을 구입했다.
그리고 오이도 사고, 아삭고추도 사고, 보라쌀도 샀다.
동네 어르신과 함께 병원에도 들렀다.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며 오랜만에 장날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매실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매실이 너무 무거웠다.
손에 든 봉지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요즘 내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는 들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에 매실과 장 본 물건들을 싣고 나니 엄마도 나도 조금 웃음이 났다.
"매실이 사람 잡겠네."
엄마의 한마디에 나도 따라 웃었다.
회복은 텃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텃밭에 출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복에는 출근한 하루였다.
버스를 기다리고, 시장을 걷고, 엄마와 물건을 고르고, 무거운 매실 앞에서 무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그 모든 것이 오늘의 회복이었다.
회복이라는 것이 꼭 누워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천천히 걷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엄마와 장을 보는 것도 회복의 한 과정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회복이다.
무거우면 택시를 타면 된다.
힘들면 쉬면 된다.
오늘은 그것을 배운 날이었다.
당연했던 하루가 감사해지는 시간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참 평범한 하루였다.
버스를 기다리고, 장에 가고, 매실을 사고, 택시를 타고 돌아온 하루.
그런데 요즘은 그런 평범한 하루가 참 고맙다.
수술 전에는 당연하게 했던 일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장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튼실한 매실을 보고 기분 좋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거운 것은 무겁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
오늘은 회복 4일차.
그리고 시골 장날 출근 1일차였다.
텃밭에는 가지 못했지만, 오늘도 나는 조금씩 회복 중이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힘들 때 무리하지 않고 도움을 선택할 수 있을까?
-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 중 오늘 감사한 일은 무엇일까?
-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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