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1일째, 오늘은 비 오는 아침 산책과 해바라기, 그리고 엄마의 아픔을 통해 회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오늘은 회복 11일차다. 오늘은 늦잠을 잤다.
늦잠이라고 해도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눈을 뜬 시간은 6시 35분이었다.
일어날까, 조금 더 누워 있을까 망설이게 하는 날씨였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아침 산책을 가기에는 조금 귀찮은 날이었다. 무엇보다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할까
나는 무엇인가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갑도, 가방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너 학교 다닐 때 참 보이시했어."
"여자애들이 너 많이 좋아했어."
나는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친구들은 기억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차가워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를 들고 나가면 잘 잊어버리던 기억도 있다.
회복 기간 동안 나와 한 약속
회복을 위해 이곳에 내려오면서 나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몸이 허락하는 날에는 아침마다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짧은 거리라도 자전거를 타보기로.
예전처럼 무리해서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상태를 살피며 조금씩 움직여 보기로 한 나와의 약속이다.
자전거가 집으로 온 뒤로는 짧은 거리라도 꾸준히 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비 오는 길에서 만난 해바라기
비가 내리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늘 있었을 텐데, 오늘따라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왔다.
우뚝 혼자 서 있는 해바라기.
이상하게 그 모습이 나 같았다.
나는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왔다.
내 일상은 원래 바빴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손녀들과 놀아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나는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조금 뒹굴거리다, 저녁에는 자전거를 탄다.
차도 없다. 전화도 되도록 받지 않는다.
줌 회의는 참여해도 되지만 그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곳에 내려온 지 10일이 지나니, 어쩌면 내가 혼자 서 있는 해바라기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바쁘게 움직이던 내가, 이제는 조금 떨어져 혼자 서 있는 시간.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필요한 시간인 것 같기도 하다.
비 오는 아침, 엄마표 시래기 된장국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침 먹자."
부랴부랴 밥상 앞에 앉았다.
엄마표 시래기 된장국에 밥을 먹었다.
비 오는 아침에 먹는 시래기 된장국은 참 좋았다.
엄마의 짜증은 엄마의 마음이 아니라 아픔이었다
그런데 오전 내내 비가 내려서인지 엄마의 "아이고."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어른들은 날이 궂으면 삭신이 쑤신다고 하신다.
오늘 엄마가 딱 그랬다.
몸이 아프니 말투도 조금 날카로워졌다.
괜히 나에게 짜증도 내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엄마의 짜증이 엄마의 마음이 아니라 엄마의 아픔이라는 것을 아니까.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프니 마음도 예민해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운하기보다 안쓰러웠다.
방문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11시쯤 일주일에 세 번 방문하시는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엄마의 짜증 섞인 말투와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보시더니 금방 알아차리시는 것 같았다.
오늘 엄마가 다섯 번째 방문 집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앞에 들른 분들 가운데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몸이 아프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주사를 놓아드렸다고 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에게도 물으셨다.
"주사 맞으실래요?"
엄마는 맞겠다고 하셨다.
주사를 맞고, 혈압을 체크하고, 간단한 물리치료를 받고 나니 엄마 얼굴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비가 그쳐서일 수도 있어
간호사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조금 있다가 엄마가 말씀하셨다.
"신기하네. 주사 맞았다고 좀 괜찮은 것 같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비가 그쳐서 그럴 수도 있어."
엄마도 웃으셨다.
회복은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회복 11일차.
오늘은 비가 오고, 해바라기를 보고, 엄마의 아픔과 짜증을 조금 받아낸 날이다.
생각해 보면 회복은 나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몸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아픔을 조금 더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혼자 서 있는 해바라기 같다고 느낀 아침이었지만, 하루를 지나고 보니 혼자만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 비 오는 날의 해바라기
-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준 엄마
- 방문 간호사 선생님
- 아픈 몸으로 웃음을 되찾은 엄마
모두 오늘의 회복 안에 있었다.
오늘은 회복 11일차.
비 오는 날, 나는 해바라기 앞에서 나를 보았고, 엄마의 아픔 속에서 마음을 조금 더 배웠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내 몸과 한 약속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 가까운 사람의 짜증 뒤에 숨어 있는 아픔을 본 적이 있을까?
- 오늘 나를 닮았다고 느낀 풍경이나 사물은 무엇이었을까?
#회복11일차 #회복일기 #엄마텃밭출근일기 #뇌동맥류회복기 #뇌동맥류수술후기 #뇌동맥류수술 #비오는날 #아침산책 #해바라기 #자기돌봄 #회복의시간 #엄마와딸 #방문간호 #시래기된장국 #시골생활 #시골일상 #자연속회복 #쉼의시간 #부모의아픔 #마음회복 #건강회복 #중년건강 #50대이야기 #중년의삶 #일상에세이 #중년에세이 #오늘의기록 #한결같은민주 #보라강민주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