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3일째, 오늘은 생일이었다. 특별한 이벤트보다 조용한 산책, 엄마표 미역국, 가족의 시간, 그리고 자연이 준 작은 푸놀치 선물이 더 깊게 남은 하루였다.
오늘은 회복 13일차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3일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바로 내 생일이다.
그래서 어제는 서산에 사는 여동생과 제부가 엄마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생일이라 그런지 집안이 조금 더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생일이지만, 오늘도 회복의 시간을 이어가기로 했다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하루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요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잘 쉬는 것이고, 오늘도 그 회복의 시간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회복을 위해 스스로와 약속한 루틴.
아침 산책.
오늘도 천천히 집을 나섰다.
길가에 활짝 핀 무궁화가 준 생일 인사
길가에는 무궁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볼 때마다 참 곱고 사랑스럽다.
분홍빛, 흰빛, 진한 자주색.
개량종으로 보이는 다양한 무궁화들이 길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때 보던 무궁화는 어떤 모습이었지?'
가물가물 기억이 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금방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기억은 조금 흐려도 그때의 감정만은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감과 감꼭지로 만든 푸놀치 얼굴
오늘 산책길에서는 또 다른 선물을 만났다.
감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작은 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감을 감싸고 있던 꼭지도 함께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푸놀치를 하고 싶다.'
나는 떨어진 작은 감과 감꼭지를 하나씩 주워 들었다.
그리고 길가에 앉아 사람 얼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자연이 오늘 내게 내어준 재료들이었다.
한 조각 한 조각 놓아가며 얼굴을 만들었다.
완성하고 나니 이상하게 내 얼굴 같기도 했다.
사진을 찍어 지인에게 보내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푸근하게 웃는 모습이 어머님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다시 작품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이번 작품은 나 스스로도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정말 잘 표현했구나.'
작품 하나에 혼자 감동하고, 혼자 웃으며 산책을 마무리했다.
대문 밖까지 흘러나온 엄마표 미역국 냄새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문을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엄마표 소고기 미역국이었다.
그 향기가 대문 밖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일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준비한 것은 없었다.
미역국 한 그릇.
그런데 이상하게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나도 엄마처럼 미역국을 끓여보려고 여러 번 따라 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이유는 하나인 것 같다.
엄마의 사랑은 레시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미역국 안에 함께 들어가 있으니 같은 재료를 써도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것 아닐까.
익산에서 온 남동생, 함께 먹은 생일 밥상
집에 들어가 보니 엄마와 여동생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런데 엄마가 말씀하셨다.
"동생 오면 같이 먹자."
남동생은 익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금 뒤 남동생도 도착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생일 노래도 함께 부르고, 웃으며 식사를 했다.
거창한 생일파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생일보다 마음이 따뜻했다.
남은 케이크를 보며 떠오른 동네 이모
식사를 마친 뒤에는 케이크를 잘랐다.
그런데 모두 밥을 배불리 먹어서인지 조금씩만 먹었다.
케이크가 꽤 많이 남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동네 이모였다.
진짜 이모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가족처럼 지내온 분이다.
요즘은 걷는 것이 많이 힘드셔서 거의 집에서만 지내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셨고, 동네도 함께 다니셨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불편해지셨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케이크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모께 갖다 드리면 좋아하시겠다.'
생일이라서 더 많이 받는 것보다, 조금 나누는 것이 더 행복한 나이가 되었나 보다.
오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
회복을 위해 내려온 시간이 벌써 13일째.
오늘은 내 생일이었지만, 가장 큰 선물은 가족이었다.
- 산책길에서 만난 무궁화
- 감 하나와 감꼭지로 만든 작은 푸놀치 작품
- 엄마가 끓여주신 소고기 미역국
- 오랜만에 함께한 형제들
- 케이크를 나누고 싶은 마음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행복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밥을 먹을 가족이 있고, "생일 축하한다."는 한마디를 건네줄 사람이 있고,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도 참 충분한 하루가 아닐까.
오늘은 회복 13일차.
생일을 맞아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오래도록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내 생일에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 나에게 엄마의 음식처럼 레시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은 무엇일까?
- 오늘 내가 받은 마음을 누구와 나누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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