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34일차,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엄마의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의 시골집에서 지낸 지 34일째입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엄마와 들깨에 비료를 주고 밭두렁의 풀을 뽑았습니다. 들깨에는 비료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좋지 않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도 적당한 거리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부터 엄마의 마음은 들깨밭에 가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엄마는 들깨에 비료를 줘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오후가 되어 날씨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저는 엄마에게 내일 아침 일찍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습니다.

방 안에서 안마의자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이미 일어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오늘 비료 줄 거야?”

엄마는 그러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우스 안에 있던 비료를 텃밭으로 옮겼습니다.

엄마는 텃밭으로 걸어가시다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모기약부터 가져와.”

시골의 여름 아침은 모기와 함께 시작되는 날이 많습니다. 저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모기약을 가져왔습니다.

엄마의 팔과 다리, 옷 위까지 온몸에 모기약을 골고루 뿌려드렸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들깨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밤새 내린 이슬이 옷을 적셨습니다

비료를 작은 그릇에 담아 들깨 옆에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이라 들깨와 풀잎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가득했습니다. 들깨 사이를 움직일 때마다 이슬이 옷에 묻어 바지와 소매가 금세 축축해졌습니다.

저는 들깨에 비료를 주는 일이 처음이었습니다.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보며 따라 했지만 손이 서툴렀습니다.

그러다 비료가 들깨 잎 위에 떨어졌습니다.

순간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아니, 잎사귀에 닿지 않게 주라니까.
왜 그렇게 해?”

저는 깜짝 놀라 잎 위에 떨어진 비료를 얼른 털어냈습니다.

엄마는 비료가 잎에 닿으면 들깨가 상하거나 죽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들깨에 비료를 주며 아이를 키우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들깨에 비료를 너무 많이 주면 키만 크게 웃자란다고 합니다.

줄기만 길고 약하게 자라면 비바람이 불 때 쉽게 쓰러지고, 오히려 들깨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비료를 너무 적게 주면 들깨가 충분히 자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도 관심도 너무 부족하면 아이가 힘들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스스로 자랄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일을 모두 대신해주고,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먼저 해결해주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우기 어렵습니다.

선택하고 실수하고 다시 해보는 경험이 부족해지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힘도 자라기 어렵습니다.

들깨에 비료를 주는 일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결국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필요한 만큼 돕되,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여백을 남겨주는 것.

그것이 농사를 짓는 지혜이면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강한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산책을 하면서도 자꾸 엄마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들깨에 비료를 다 준 뒤 저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엄마에게는 힘드시니 빨리 집으로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산책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길가의 꽃과 풀, 열매를 천천히 바라보며 걷지만 오늘은 왠지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걸음도 자연스럽게 빨라졌습니다.

아마 마음 한쪽에서는 엄마가 제가 없는 동안에도 계속 일을 하고 계실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엄마는 혼자 풀을 뽑고 계셨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예상대로 엄마는 집 안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밭두렁과 논 사이에 난 풀을 혼자 뽑고 계셨습니다.

엄마는 밭이나 논 주변에 풀이 자라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풀이 눈에 보이면 몸이 힘들어도 손부터 움직입니다.

저는 얼른 하우스로 가서 장갑을 끼고 낫을 가져왔습니다.

낫으로 풀을 베면 빠르고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바로 말리셨습니다.

“낫으로 베면 안 돼.
그렇게 베면 금방 또 자라.”

엄마는 풀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낫을 내려놓고 엄마 반대편에 앉아 손으로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산책을 하는 동안 엄마가 이미 많은 풀을 뽑아놓으셔서 남은 양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른 아침부터 비료를 주고 쪼그려 앉아 풀을 뽑는 일은 엄마에게 분명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만하라는 딸과 계속 일하는 엄마

저는 엄마에게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힘드니까 이제 그만해.”

하지만 엄마는 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들어가.”

제가 들어가지 않고 계속 풀을 뽑자 엄마는 답답하셨는지 저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너는 왜 말을 안 듣냐?”

저도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엄마는 왜 내 말은 안 듣는데?”

잠시 뒤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그래서 하는 것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엄마에게 일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엄마에게 밭일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해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딸이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조금 더 힘들면 되고, 내가 조금 더 아프면 되고, 자식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엄마의 말은 예전에 들었던 한마디와도 닮아 있었습니다.

“네가 아프면 어떻게 해.
내가 아프고 말지.”

엄마는 오늘도 같은 마음으로 풀을 뽑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부모의 책임감은 때로 사랑이라는 말보다 먼저 몸을 움직입니다.


엄마가 드시기 편하도록 부추 계란탕을 끓였습니다

엄마는 조금만 더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엄마와 함께 남은 풀을 조금 더 뽑은 뒤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는 길에 텃밭에서 부추를 잘라왔습니다. 아침에 부추 계란탕을 끓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엄마는 요즘 국물이 없는 음식을 드시면 목에 걸리거나 사래가 들어 힘들어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함께 준비하려고 합니다.

부추를 잘게 자르고 계란을 풀어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계란탕을 끓였습니다.

음식을 만들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엄마는 이 모든 일을 혼자 하셨을 것입니다.

밭에 나가 풀을 뽑고, 텃밭의 작물을 돌보고, 힘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자신의 밥을 차려 드셨을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엄마는 매일 자신의 하루를 혼자 책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다시 아파왔습니다.


시골에 혼자 계신 부모를 둔 자녀들의 마음

이런 걱정과 마음 아픔은 저에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부모님을 둔 자녀들은 누구나 비슷한 마음을 느끼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전화로는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정말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더운 날 밭에서 무리하고 계시지는 않은지, 몸이 아플 때 혼자 참고 계시지는 않은지 걱정하게 됩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아픈 것도 작게 말씀하시고, 힘든 일도 별일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고와 외로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멀리 있을 때는 들리지 않던 부모의 숨소리가
곁에 머물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에어컨을 켜고 엄마와 뒹굴거렸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날씨가 더욱 더워졌습니다.

새벽부터 비료를 주고 풀을 뽑은 엄마도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저 역시 몸에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에어컨을 켜고 엄마와 함께 방에서 뒹굴거리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엄마도 밖에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더운 날씨 때문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몸을 많이 움직인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엄마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에어컨 바람 아래 함께 누워 각자의 방식으로 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에게는 이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중요한 회복입니다.

회복은 매일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친 날에는 멈출 줄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들깨도 사람도 적당한 돌봄 속에서 자랍니다

오늘 들깨에 비료를 주며 사람을 돌보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들깨는 비료가 부족하면 잘 자라지 못하지만, 너무 많은 비료를 받으면 줄기만 약하게 웃자라 비바람에 쓰러질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일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너무 무관심해서도 안 되지만 상대의 일을 모두 대신하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아서도 안 됩니다.

돌봄은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을 살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은 늘 그 적당함을 넘어섭니다.

자식이 힘든 모습을 보면 자신이 더 힘들어도 먼저 일을 시작합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엄마의 그 한마디에는 평생 가족을 책임지고 살아온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회복 34일차, 엄마의 사랑은 늘 나보다 먼저였습니다

오늘 하루는 들깨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슬에 옷이 젖었고, 비료를 잘못 뿌려 엄마에게 혼이 났으며, 풀을 뽑는 엄마를 말리지 못해 함께 밭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한마디에 눈물이 났습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엄마는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몸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아픔보다 자식이 힘들지 않은 것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사람은 저였지만 저는 매일 엄마의 삶을 보며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회복 34일차.

오늘은 들깨에 비료를 주며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풀을 뽑는 엄마를 보며 부모의 사랑은 늘 자식보다 먼저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한 줄

들깨는 적당한 비료를 먹고 자라지만,
자식은 평생 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부모님은 지금도 혼자 감당하고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 부모님의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있지는 않나요?
  •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녀의 일을 너무 많이 대신하고 있지는 않나요?
  • 돌봄과 간섭 사이에서 필요한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 오늘 부모님께 어떤 안부를 먼저 물어보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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