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엄마와 함께 살아가며 평범한 하루 속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를 기록합니다.
엄마와 함께 텃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늘 같은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는 장갑을 벗어 한쪽에 툭 던져놓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다르십니다.
흙이 잔뜩 묻은 장갑을 물에 조심스럽게 씻고, 손으로 흙을 털어낸 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가지런히 널어두십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조금 신기했습니다.
요즘 장갑은 몇 천 원이면 새것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장갑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엄마께 물었습니다.
"엄마, 그냥 새것 사서 쓰면 되잖아요."
엄마는 장갑을 털며 웃으셨습니다.
"멀쩡한데 왜 버려?"
짧은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엄마는 장갑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쓸 수 있는 물건을 끝까지 존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건에도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장갑 하나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엄마가 텃밭을 일군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들깨를 심던 날도 함께했고, 잡초를 뽑던 날도 함께했고, 아욱을 따던 날도 함께했습니다.
장갑은 낡았지만, 엄마의 시간은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물건을 사용할 만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쉽게 바꾸곤 했습니다.
새것이 더 깨끗하고, 더 편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직 쓸 수 있다면 끝까지 사용하셨고, 찢어진 장갑은 바느질해서 다시 쓰시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은 절약이라기보다 물건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졌습니다.
엄마를 보며 제 삶도 돌아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물건보다 시간을 더 쉽게 버리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쉬어야 할 시간을 일로 채웠고, 몸이 보내는 신호도 미루며 살았습니다.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뒤, 엄마의 장갑을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장갑 하나도 함부로 쓰지 않으셨는데, 저는 제 몸을 너무 함부로 사용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장갑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소중한 것은 끝까지 아끼는 마음
엄마는 장갑을 빨아 다시 쓰셨습니다.
그것은 돈을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것을 쉽게 버리지 않는 삶의 태도였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습니다.
쉽게 버리고 쉽게 포기하기보다, 조금 더 살펴보고, 조금 더 아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는 말없이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저도 텃밭 일을 마치면 장갑부터 씻게 됩니다.
장갑을 씻으며 엄마를 떠올리고, 제 삶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도 엄마에게 삶을 배웠습니다.
엄마는 오늘도 장갑을 깨끗이 씻어 햇볕에 널어두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장갑 하나를 통해 소중한 것은 끝까지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엄마는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사셨고,
저는 그 하루에서 삶을 배웠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
여러분은 오래 사용하고 있는 물건 하나가 있으신가요?
그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쩌면 그 안에는 물건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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