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지내다 보면 같은 질문에 여러 번 대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할머니 언제 와?”
“이모는 어디 갔어?”
“이거 뭐야?”
분명 조금 전에 대답했는데 아이는 잠시 후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합니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매일 가져오고, 재미있게 보았던 영상을 또 보여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록으로 같은 집을 만들고 무너뜨리거나,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재우는 놀이를 반복합니다.
어른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여러 번 해본 놀이인데, 아이는 왜 같은 질문과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걸까요?
- 아이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확인하고 싶어 다시 물을 수 있습니다.
- 반복되는 질문과 놀이는 안정감과 숙달을 위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 반복을 막기보다 아이가 정말 표현하려는 마음을 살펴봐 주세요.
대답을 몰라서 다시 묻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어른은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조금 전에 말해줬잖아.”
“알면서 왜 또 물어봐?”
그러나 같은 질문을 하는 이유가 언제나 답을 몰라서인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기억한 답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할머니 언제 와?”라는 질문에도 날짜를 알고 싶은 마음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정말 다시 오는 게 맞아?
기다리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이러한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질문의 내용만 듣기보다 아이의 표정과 그 질문이 나온 상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채채의 질문을 그대로 따라 해보았습니다
채채가 같은 질문을 계속할 때면 저도 채채가 하는 질문을 그대로 따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채채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저에게 묻습니다.
“할머니는 왜 나를 따라 해?”
저는 다시 채채에게 물어봅니다.
“할머니가 채채 말을 자꾸 따라 하니까 채채는 어때?”
그러면 채채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않은 채 멋쩍게 웃습니다. 자신이 했던 행동을 다른 사람이 반복하니 듣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할머니가 자꾸 따라 해서 짜증이 난 것인지는 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잠시 멋쩍게 웃던 채채는 빠르게 주제를 바꾸거나 다른 장난을 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보여주는 것이 자신을 알아차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놀림을 받거나 자신의 질문을 거절당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채채의 웃음과 자리 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채채만이 알 것입니다. 어른이 아이의 표정 하나를 보고 “자신의 잘못을 알았구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복 질문에는 질문으로 마음을 열어주세요
아이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방식은 가끔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게 할 수 있지만 반복되면 아이가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질문이 이어질 때는 아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보는 방법이 좋습니다.
- “채채가 그게 자꾸 궁금한가 보네.”
- “할머니가 대답했는데 다시 묻고 싶은 이유가 있어?”
- “할머니가 언제 온다고 했는지 채채가 말해볼래?”
-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은 거야?”
아이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달라는 마음으로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답이 아니라 “네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있어”라는 반응일 수 있습니다.
반복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아직 낯설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매일 새로운 말을 듣고 처음 경험하는 상황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와 놀이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같은 그림책을 읽으면 어느 장면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른은 결말을 알고 있어 지루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아는 일이 그대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이번에도 내가 생각한 대로 되었어.
익숙하니까 편안해.
반복은 아이가 익숙한 세계 안에서 안정감과 자신감을 느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놀이 속에서도 아이는 성장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번 똑같은 놀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형에게 밥만 먹이던 아이가 다음에는 옷을 입혀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병원에 데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블록을 늘 같은 모양으로 쌓는 것 같지만 이전보다 높이 쌓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반복하면서 순서를 기억하고 손의 움직임을 조절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어른에게 반복은 제자리처럼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조금씩 능숙해지는 과정입니다.
경험한 일을 놀이로 반복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놀이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뒤 인형에게 주사를 놓거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인형놀이로 다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엄마와 헤어졌던 경험을 인형이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로 반복하기도 합니다.
즐거운 경험뿐 아니라 무섭거나 속상했던 일도 놀이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다시 구성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루어봅니다.
- “인형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구나.”
- “주사가 무서웠나 봐.”
- “엄마를 다시 만나서 기분이 좋아졌네.”
놀이 속 감정을 말로 표현해주면 아이는 자신의 경험을 조금 더 안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장난감을 반복해서 원하는 마음
아이가 형제자매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계속 원할 때도 있습니다. 한 번 차례를 양보받았는데 언니가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그것마저 달라고 울 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기다리는 감정과 차례의 규칙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전에 울어서 장난감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같은 방법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 “또 가지고 싶구나.”
- “기다리기 힘들어서 속상하구나.”
- “하지만 지금은 언니 차례야.”
아이가 한 번 설명을 들었다고 바로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림 역시 반복해서 경험하며 배우는 능력입니다.
어른이 지칠 때는 횟수와 시간을 정해주세요
아이가 같은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하거나 같은 놀이를 반복하자고 하면 어른도 지칩니다. 아이의 반복을 존중한다고 해서 끝없이 맞춰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이 해줄 수 있는 범위를 미리 알려주세요.
- “이 책은 두 번 더 읽고 다른 책을 골라보자.”
- “할머니는 자동차 놀이를 10분 동안 같이할 수 있어.”
- “할머니가 언제 온다고 했는지 이번에는 채채가 말해볼까?”
아이의 요구를 갑자기 거절하기보다 끝나는 시점을 알려주면 아이도 마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놀이에 작은 변화를 더하는 것도 좋습니다.
- “이번에는 인형이 어떤 음식을 먹을까?”
- “자동차가 다른 길로 가면 어디에 도착할까?”
- “이번에는 채채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볼래?”
익숙한 틀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요소를 하나씩 더하면 아이는 안정감을 잃지 않고 놀이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모든 반복이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아이의 반복은 대부분 배우고 익히며 안정감을 얻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 행동 때문에 다른 활동으로 전환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작은 변화에도 극심하게 불안해하는 모습이 계속된다면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눈 맞춤과 의사소통, 또래 관계에서도 뚜렷한 어려움이 함께 나타난다면 반복 행동 하나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관련 전문가와 상담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는 반복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갑니다
아이는 같은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자신이 배운 것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같은 질문으로 기억과 관계를 확인하고, 같은 책을 읽으며 언어를 익힙니다. 같은 놀이를 반복하면서 감정을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채채의 질문을 따라 했을 때 보였던 멋쩍은 웃음도 저에게는 하나의 질문으로 남았습니다.
채채가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것인지, 할머니의 반응이 불편했던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을 해석할 때는 어른의 생각으로 너무 빨리 결론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배웁니다.
아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면
대답만 되풀이하기 전에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살펴봐 주세요.
“이 이야기를 할머니와 한 번 더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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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1. 아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을 다시 확인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서일 수 있습니다. 질문 뒤에 불안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Q2.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해도 계속 읽어줘야 하나요?
반복해서 읽는 과정은 언어와 기억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른이 지친다면 “두 번 더 읽고 마무리하자”처럼 가능한 횟수를 미리 알려줘도 괜찮습니다.
Q3. 아이의 반복 행동은 언제 전문가와 상담해야 하나요?
반복 때문에 일상적인 활동 전환이 매우 어렵거나 작은 변화에도 심하게 불안해하고, 의사소통과 또래 관계의 어려움이 함께 나타난다면 전문가와 상담해볼 수 있습니다.
※ 아이의 반복 질문과 놀이 방식에는 연령과 기질에 따른 개인차가 있습니다. 한 가지 행동만으로 발달 상태를 판단하기보다 아이의 전반적인 의사소통과 일상생활 모습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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