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10일차, 기다려 주는 사람들 속에서 회복을 배웠다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0일째, 오늘은 새벽 물안개와 일출, 그리고 시골 버스 안에서 만난 기다림의 마음을 기록해 본다.

오늘은 회복 10일차다.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사실 믿기지 않는다.

회복이라는 시간은 참 이상하다. 하루하루는 더디게 가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어느새 열흘이 지나 있다.

아직도 옻이 오른 다리는 가렵다. 아마 그 영향 때문인지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잠에서 깼다.


새벽 5시 25분, 다시 잠들지 못한 아침

눈을 뜬 시간은 새벽 5시 25분이었다.

조금 더 누워 있으려고 애써 보았다.

그런데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문득 물안개가 떠올랐다.

오늘은 조금 더 일찍 나가면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어젯밤 내가 대문을 잠갔는데 대문이 열려 있었다.

'엄마가 벌써 움직이셨구나.'

역시 엄마는 나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하고 계셨다.


새벽부터 강낭콩을 따러 가는 앞집 아주머니

대문을 나서는데 앞집 아주머니도 막 나오고 계셨다.

나는 인사를 하며 여쭈었다.

"아주머니, 어디 가세요?"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강낭콩 따러 가."

새벽부터 밭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도 모르게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그 말 외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른 새벽인데도 이미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궁화와 일출, 그리고 칡잎 위에 앉은 시간

천천히 개울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무궁화가 더 많이 피어 있었다.

며칠 사이 꽃이 활짝 피어나 길가를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일까.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름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숨었다가, 또다시 얼굴을 내밀기를 반복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길가에 있는 칡덩굴에서 커다란 칡잎 몇 장을 따서 바닥에 깔았다.

그 위에 조용히 앉아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혼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앉아 있던 곳 가까이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 서성이는 것이 궁금했는지 묶여 있던 개가 연신 짖기 시작했다.

닭은 아침을 알리듯 울고, 새들은 분주하게 지저귀고, 개울물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 조용히 앉아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을 보내는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회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시간이 아닐까.


9시 버스를 타러 가는 딸을 배웅하는 엄마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옻 약이 다 떨어졌고, 가려움은 허벅지까지 번져 있었다.

9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집을 나서려는데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80 먹은 노모가 60 먹은 아들 걱정을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버스를 놓칠까 봐 걱정되셨는지 보행기를 밀고 정류장까지 나오셨다.

내가 버스에 타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시골 버스 안에서 만난 기다림

시골 버스는 참 정겹다.

처음에는 나 혼자만 승객이었다.

조금 가다가 남자 어르신 두 분이 타셨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가 정류장에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지팡이를 짚고 계셨다.

기사님은 멀리서부터 천천히 속도를 줄이셨다.

버스를 정차한 뒤에도 서두르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버스까지 걸어오시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런데 기사님은 계속 같은 말씀을 하셨다.

"천천히 오세요."
"버스 안 갑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조심조심."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아무도 한숨을 쉬지 않았다.

아무도 늦는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으시자 그제야 버스는 출발했다.


할머니의 500원을 대신 넣어드리며

잠시 후 할머니가 차비 500원을 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버스가 움직이는 중이라 위험해 보였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할머니, 저 주세요."
"제가 넣어드릴게요."

동전을 받아 요금함에 넣어 드렸다.

아주 작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은 참 따뜻했다.

병원에 가는 길이었지만, 버스 안에서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풍경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그 풍경은 계속되었다.

할머니가 먼저 천천히 내리셨다.

모든 사람들이 기다렸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가 안전하게 내리신 뒤에야 우리도 차례대로 내렸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회복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마음.

누군가의 걸음을 존중해 주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의 속도를 인정해 주는 마음.

어쩌면 나 역시 지금 그런 기다림 속에서 회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회복은 나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일

몸이 예전처럼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오늘 버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오늘은 회복 10일차.

물안개도 아름다웠고, 무궁화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기다려 주는 마음이 가장 아름다웠던 하루였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누군가의 느린 걸음을 기다려 준 적이 있을까?
  • 내 몸이 회복하는 속도를 나는 얼마나 존중하고 있을까?
  • 오늘 나에게 가장 따뜻하게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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