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7일째, 오늘은 옻 알레르기 때문에 시골 병원에 다녀왔다.
회복을 위해 내려온 시골에서 또 하나의 몸의 신호를 만났다. 옻닭을 먹은 뒤 올라온 옻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병원으로 향했다.
가려움과 붉은 열감으로 힘든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도 시골 병원 앞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텃밭의 들깨를 보며 또 하나를 배웠다. 회복은 빨리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도로 뿌리내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밤새 잠을 설치게 한 옻 알레르기
오늘은 회복 7일차다.
어제 옻닭을 먹은 뒤 양쪽 다리가 가렵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국에 들러 약을 받아 먹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약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밤새 가려움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긁으면 더 가렵고, 참으면 더 뜨거웠다.
밤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새벽에 일어나 다리를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발목은 퉁퉁 부어 있었고, 종아리는 뜨겁고 벌겋게 변해 있었다.
더 놀란 것은 팔과 허벅지까지 옻이 번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순간 겁이 났다.
옆집 자전거를 빌려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조금 천천히 가도 돼."
"병원은 기다리면 되니까."
엄마 말씀이 맞았다.
그런데 예전에 병원 앞에서 새벽부터 기다리시던 어르신들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서둘러 준비를 했다.
모자를 쓰고,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하고, 긴팔과 긴바지까지 입었다.
완전무장이었다.
차는 없었다.
그래서 옆집 아주머니께 자전거를 빌렸다.
우리 자전거에는 바구니가 없었는데 아주머니 자전거에는 바구니가 달려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예전 같으면 자전거를 타고 병원에 다녀오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페달을 밟는 것도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몸이 아직 예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병원 앞에는 이미 여덟 분의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었다.
그런데 병원 입구에는 이미 여덟 분의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도대체 몇 시에 오신 걸까?'
얼마나 몸이 불편하셨으면, 얼마나 빨리 진료를 받고 싶으셨으면, 이 이른 시간부터 병원 앞을 지키고 계셨을까.
종아리는 점점 뜨거워지고 가려웠다.
결국 용기를 내어 어르신들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제가 옻이 너무 심하게 올라왔어요."
"너무 가렵고 따가워서 그런데 제가 먼저 진료를 받아도 될까요?"
바지를 살짝 걷어 종아리를 보여드렸다.
한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다 바빠서 일찍 온 거야."
잠시 뒤 다른 어르신 한 분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던지."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다.
나는 없는 사람이 되고, 병원 앞은 사랑방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나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르신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하셨다.
"나는 옻을 안 타."
"나는 지네한테 물려봤어."
"지네 못 들어오게 하는 약이 있다던데."
"들깨 모종은 언제 하는 겨?"
순식간에 병원 앞은 진료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일상을 나누는 사랑방이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빨리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 여기가 시골이구나.'
이곳에서는 아픈 이야기도 삶의 일부였고, 기다림도 삶의 일부였다.
2층 병원으로 올라오는 어르신들의 걸음
잠시 후인 7시 50분.
병원 문이 열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출근하셨다.
병원은 2층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50분쯤 병원 안으로 들어가 쇼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출입문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조용한 복도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톡... 톡... 톡...
지팡이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리나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올라오시는구나.'
내 생각은 맞았다.
허리가 반 이상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고 계셨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올라오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먹먹했다.
계단 하나를 오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새삼 느껴졌다.
그래도 이 병원을 찾는 이유
그런데도 어르신들이 이 병원을 계속 찾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다른 병원은 가보지 않아 비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 차분하게 설명을 잘해 주신다.
어려운 의학 용어보다 환자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 주신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친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 한 사람 서두르거나 뒤로 미루지 않고 공평하게 진료를 보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 허리가 굽고, 다리가 아파도, 계단을 힘겹게 올라와도 어르신들은 오늘도 이 병원을 찾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 두 대와 연고, 그리고 옻을 멀리하라는 말
잠시 후 간호사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1번 누구세요?"
한 할머니가 이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2번, 3번, 차례대로 이름이 불렸다.
나는 결국 도착한 순서대로 아홉 번째 진료를 받았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 선생님은 다리를 보시더니 바로 말씀하셨다.
"옻이 많이 올라왔네요."
주사를 두 대 맞고, 먹는 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앞으로는 옻은 드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식 하나를 또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내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더 아쉬웠다.
차가운 수건 하나가 고마웠던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종아리는 계속 뜨거웠다.
약국에 들러 냉찜질팩을 찾았는데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수건을 물에 적셔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어느 정도 차가워지자 종아리에 감아 보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신기하게도 벌겋던 피부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차가운 수건 하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들깨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몸이 조금 진정되자 잠깐 텃밭에 나가 보기로 했다.
며칠 전 엄마와 함께 심었던 들깨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모종들이 이제는 제법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비를 견디고, 햇볕을 견디며, 흙속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가만히 들깨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지금 저 들깨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간.
남들보다 조금 느릴 수도 있지만, 나만의 속도로 살아남고 있는 시간.
며칠 전 엄마는 들깨를 심으며 말씀하셨다.
"너무 서둘러 크면 나중에 쓰러진다."
그때는 들깨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이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
회복도 서두른다고 빨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몸이 스스로 뿌리를 내릴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 그것이 회복이었다.
회복은 멈춘 것이 아니라 뿌리내리는 중이었다
오늘도 내 몸은 가렵고, 다리는 아직도 붉다.
하지만 조금은 안심이 된다.
몸은 힘들어도 회복은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들깨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었고,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회복하고 있었다.
오늘은 회복 7일차.
들깨는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나도 조금씩 내 삶의 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고 있지는 않을까?
-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나를 얼마나 다정하게 대하고 있을까?
- 내가 오늘 나만의 속도로 뿌리내리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회복7일차 #회복일기 #엄마텃밭출근일기 #뇌동맥류회복기 #뇌동맥류수술후기 #뇌동맥류수술 #옻알레르기 #옻올랐을때 #피부알레르기 #피부가려움 #시골병원 #시골의료 #시골생활 #시골일상 #어르신이야기 #텃밭이야기 #들깨모종 #들깨이야기 #자연속회복 #쉼의시간 #건강회복 #중년건강 #50대이야기 #중년의삶 #일상에세이 #중년에세이 #오늘의기록 #감사한하루 #한결같은민주 #보라강민주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