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이 스스로 지은 별칭에 담긴 마음

요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즐겁습니다. 물론 작은 바람도 있습니다.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장난은 조금만 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20년 가까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기대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통해 저 역시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여전히 좋은 이유

첫 만남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런 시간을 가지고 있었단다.

아이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럼 왜 아직도 이 일을 하고 계세요?

그 질문에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야 젊은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조금 더 덧붙였습니다.

선생님은 너희들과 만나는 시간이 참 좋아. 청소년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도 배우게 되거든.

감정카드가 열어준 아이들의 이야기

첫 시간에는 감정카드를 활용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가장 자주 느꼈던 감정을 찾아보세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감정을 골랐습니다. 사실 제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감정들은 이미 아이들이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갑다”라는 감정을 선택했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너희들을 만나러 오면서 기대도 했고, 설레기도 했고, 걱정도 했단다. 오늘 아침 날씨가 너무 좋아서 즐겁기도 했고 만족스럽기도 했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감정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외롭다는 아이의 이야기

한 친구는 “만족스럽다”를 선택했습니다.

5월 한 달 동안 잘 지낸 것 같아요. 그래서 6월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친구는 “편안하다”를 골랐습니다.

새로운 환경이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친구들도 생겼고요.

그런데 한 친구는 조용히 “외롭다”를 선택했습니다. 친구도 많지 않고, 주말에는 놀러 나가기 어렵고, 부모님도 각자 방에 계시는 경우가 많아서 외롭다고 했습니다.

순간 교실이 조금 조용해졌습니다. 누군가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외로움을 이야기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모두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별칭 속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

이후에는 자신만의 별칭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먼저 제 별칭을 소개했습니다.

선생님은 ‘보라’라는 이름을 사용해요.

보라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도 보고, 다른 사람도 보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도 자신만의 이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밝은 해 : 항상 밝고 긍정적인 사람
  • 네모 : 정확한 것이 좋고 네모를 좋아해서
  • 리춘수 : 축구선수 이천수를 닮아서
  • 슈퍼소닉 : 파란색을 좋아하고 날쌔서
  • 솜사탕 : 화려해 보이지만 상처를 잘 받아서
  • : 귀엽고 듬직하고 날쌔서
  • 방울 :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 같아서
  • 구름 :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서
  • 네잎클로버 : 모두에게 행운을 주고 싶어서
  • 딸기 : 달콤하고 새콤한 모습이 있어서
  • 바람 : 자유롭고 시원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별칭을 듣다 보니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자기소개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청소년들을 미성숙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외로움을 알고, 자신의 강점을 알고, 자신의 상처를 알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집단상담 첫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어쩌면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알고, 서로의 감정을 듣고, 서로를 조금씩 궁금해하는 것에서 말입니다.


마무리하며

중학생들과의 집단상담은 매번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게 합니다. 장난스럽게 보이는 아이들 안에도 진지한 마음이 있고, 웃음 뒤에도 외로움이 있으며, 짧은 별칭 하나에도 자신을 설명하고 싶은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반갑고, 기대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궁금하면 다음 이야기도 만나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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