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 14일째, 오늘은 방앗간에서 들기름을 짜며 엄마의 사랑을 다시 보았다.
오늘은 회복 14일차다. 회복을 위해 엄마 집에 내려온 지도 어느새 2주가 되어 간다.
시간은 참 빠르다.
요즘은 여동생과 제부도 함께 와 있어서 집이 조금 더 북적거린다.
방이 두 개뿐이라 엄마와 나는 안방을 함께 쓰고, 여동생과 제부는 작은방을 사용하고 있다.
잠들기 어려웠던 밤
그런데 어젯밤은 유난히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엄마는 꿈을 꾸셨는지 계속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가 잠잠해지면 이번에는 작은방에서 제부의 잠꼬대 소리가 안방까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정말 예민한 사람이구나.'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는 나를 보며 새삼 실감했다.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엄마의 새벽 루틴과 흐린 아침
그런데 오래 자지도 못했다.
엄마는 늘 새벽 6시쯤 일어나 우유를 데워 드신다.
그것도 엄마의 오랜 루틴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계속 트림을 하시고, 속이 불편하신지 "아이고." 하며 뒤척이셨다.
엄마의 불편한 기색을 보는데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도 그냥 일어나 아침 산책을 나갔다.
오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해를 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비가 와야 할 것 같은 하늘인데 며칠째 예보만 있을 뿐 비는 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낮에는 후덥지근하기만 하다.
들기름과 참기름이 떨어진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문득 들기름과 참기름이 거의 다 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들기름하고 참기름 좀 사야겠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엄마가 바로 말씀하셨다.
"오늘 기름 짜러 갈까?"
엄마도 이미 들기름이 떨어진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좋아요. 그럼 기름 짜러 가요."
그런데 엄마는 또 걱정을 하셨다.
"오늘 토요일인데 방앗간이 할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토요일이라 오전에는 할 거예요. 얼른 가요."
서둘러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가면 또 장날이었다
그런데 시장에 도착하니 또 장날이었다.
이상하게 요즘은 시장에만 나오면 장날인 것 같다.
회복하고 있는 동안 장날을 몇 번이나 만나는지 모르겠다.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활기 속에서 엄마는 곧장 방앗간으로 향하셨다.
방앗간에서 들기름을 짜다
엄마는 사장님께 말씀하셨다.
"깨 씻어서 들기름 짜주세요."
사장님은 웃으며 알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 자리에서 절대로 떠나지 않으신다.
깨가 다 짜질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신다.
예전부터 늘 그러셨다.
왜 그러시냐고 여쭤보면 엄마는 말씀하신다.
"혹시 다른 깨가 섞이면 안 되잖아."
"내 깨로 짠 기름은 내가 보고 가져가야지."
몇 번이나 "엄마, 괜찮아요."라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않으신다.
그 모습이 엄마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평생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삶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방앗간으로
엄마가 방앗간을 지키고 계시는 동안 동생과 나는 옆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사 왔다.
엄마에게도 한 모금 드시라고 건네드렸다.
기름이 다 짜질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그런데 집에 참기름도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 몰래 참기름 두 병을 구입했다.
엄마는 늘 자식들 것을 먼저 챙기고 본인 것은 뒤로 미루시는 분이다.
조금이라도 보태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6병이 나왔지만 엄마 몫은 없었다
드디어 들기름이 다 나왔다.
그런데 엄마 표정을 보니 뭔가 아쉬워 보였다.
엄마가 예상했던 것보다 기름이 적게 나온 것이다.
엄마는 7~8병 정도 나올 줄 아셨는데 실제로는 6병이 나왔다.
엄마 머릿속에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던 것이다.
- 큰오빠 한 병
- 남동생 한 병
- 여동생 한 병
- 나 한 병
- 우리 두 딸이 한 병씩
그렇게 나누고 나면 여섯 병이 된다.
그러면 정작 엄마가 드실 들기름은 한 병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한 병 더 사야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른 들기름 두 병을 더 구입했다.
엄마에게 들기름 한 병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었다
엄마는 늘 당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신다.
당신 것은 없어도 괜찮다고 하시면서 자식들이 먹을 것은 꼭 챙기신다.
어릴 때는 그 마음을 잘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엄마에게 들기름 한 병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다.
'우리 자식들도 이 들기름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평생 이렇게 살아오셨겠구나.
무엇을 하나 사도, 무엇을 하나 만들어도, 가장 먼저 자식들을 떠올리며 살아오셨겠구나.
회복 14일차, 오늘 내가 배운 것
오늘도 회복을 하며 엄마에게 또 하나를 배웠다.
엄마는 기름을 짜러 간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담으러 가셨던 것 같다.
오늘은 회복 14일차.
방앗간에서 들기름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의 사랑도 그렇게 평생 우리 가족에게 한 방울 한 방울 흘러왔다는 것을 다시 느낀 하루였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어떤 사소한 물건이나 음식에서 느껴본 적이 있을까?
- 누군가 나를 위해 챙겨준 작은 것이 오래 기억에 남은 적이 있을까?
- 오늘 내가 사랑을 담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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