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회복일기를 쓰지 못해 오늘은 뇌동맥류 수술 후 회복 38일차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몸이 찌뿌둥하고 힘도 없었습니다. 산책을 가지 말까 고민했지만, 눈을 뜬 채 집에만 있으면 시간이 더디게 갈 것 같았습니다.
운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조금 싫었던 것일까요.
결국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몸이 무거워 평소처럼 푸놀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연물을 찾아 무엇을 만들어볼까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길만 천천히 걸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끝난 산책이었지만, 오늘은 그 길 끝에서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과 밥 한 끼의 따뜻함을 만났습니다.
- 몸이 무거워 평소보다 짧게 걸었던 아침
- 회관 앞 의자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들
- 미역국에 물을 더 부어 함께 먹은 아침 식사
- 호박을 볶아 넣은 비빔국수와 시골의 정
몸이 무거워 평소보다 짧게 걸었습니다
산책길에 나섰지만 몸은 여전히 무거웠습니다.
다른 날에는 길을 걸으며 주변의 꽃과 풀, 열매를 살펴보고 그날 눈에 들어오는 자연물로 푸놀치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걸었습니다.
몸에 힘이 없으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푸놀치를 하지 않아 다른 날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마을회관 앞에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았습니다.
그때 앞집 아주머니가 논에 다녀오시는지 집 쪽으로 걸어오셨습니다. 제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아주머니도 의자 하나를 가져와 제 옆에 앉으셨습니다.
두 사람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번에는 옆집 아주머니가 밭에 있는 하우스에서 나오셨습니다.
멀리서 우리가 잘 보이지 않으셨는지 큰 소리로 물으셨습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야?”
저는 웃으며 제 이름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집 아주머니도 의자를 하나 가져와 우리 옆에 앉으셨습니다.
혼자 잠시 쉬려고 앉았는데 어느새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아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미역국에 물을 더 부어 함께 먹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앞집 아주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잠시 후 다시 나오신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미역국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논에 갔다 왔더니 국물이 다 졸아버렸어. 그래서 물을 더 부었어.”
그러면서 우리에게 집에 가서 아침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가 집에 혼자 계시니 그냥 집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네 엄마도 오라고 해. 같이 먹자.”
저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모시고 앞집 아주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엄마와 아주머니들과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었습니다.
논에 다녀오는 사이 국물이 졸아 물을 더 부었다는 미역국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먹으니 더 맛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은 이런 것이 좋은 거야.”
저도 “네”라고 대답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혼자 먹으려고 끓인 미역국이라도 누군가 오면 물을 조금 더 붓고 함께 먹는 곳.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밥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밥상에 자리를 내어주는 곳.
아직 이렇게 정이 남아 있는 곳이 시골인 것 같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제가 대신 주문해드립니다
앞집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글을 잘 모르십니다.
물론 우리 엄마도 한글을 띄엄띄엄 읽으십니다.
그래서 두 분이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제가 인터넷으로 대신 주문해드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앞집 아주머니가 필요한 물건을 부탁하셔서 어제 주문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오늘 벌써 도착했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에게 물건이 왔으니 가져가시라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단숨에 달려오셨습니다.
요즘 저는 마을 어르신들의 에어컨과 선풍기를 살펴드리고, 휴대폰 기능을 봐드리는 데 이어 필요한 물건까지 대신 주문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혼자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점심에는 호박을 볶아 비빔국수를 만들었습니다
물건을 가지러 온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되어갔습니다.
아침에는 아주머니 댁에서 미역국을 얻어먹었으니 점심에는 제가 국수를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국수 삶아서 간단하게 먹을까요?”
제가 묻자 아주머니도 그러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텃밭에서 따온 호박을 가늘게 채 썰어 볶았습니다. 국수를 삶아 비빔장을 넣고, 그 위에 볶은 호박을 올려 비빔국수를 만들었습니다.
비빔장은 얼마 전 식당에서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사 온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별로 맵지 않았는데 어르신들에게는 꽤 매웠던 모양입니다.
“늙으면 매운 것도 못 먹나 봐. 왜 이렇게 매운 거야?”
맵다고 하시면서도 두 분 모두 자기 할당은 다 드셨습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저도 웃었습니다.
다음에는 비빔장을 조금 덜 넣어야겠습니다. 제가 느끼는 매운맛과 어르신들이 느끼는 매운맛이 다르다는 것도 오늘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밥을 먹은 하루
오늘은 아침부터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밥을 먹었습니다.
아침에는 앞집 아주머니가 끓인 미역국을 엄마와 함께 먹었고, 점심에는 제가 호박을 볶아 넣은 비빔국수를 만들어 아주머니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침에는 제가 밥을 얻어먹고, 점심에는 제가 국수를 만들어드렸습니다.
시골에서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밥을 함께 먹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혼자 먹을 음식에 물을 조금 더 붓고, 텃밭에서 딴 호박 하나를 더 볶으면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
누가 먼저 베풀었는지, 누가 더 많이 준비했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내가 얻어먹고, 다음에는 내가 만들어 나눕니다.
그렇게 음식이 오가고 사람도 오갑니다.
오늘 아침 몸이 찌뿌둥하고 힘이 없어 산책을 가지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집을 나섰고, 평소보다 일찍 돌아와 회관 앞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곳에 앉지 않았다면 아주머니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엄마와 함께 미역국을 먹는 아침도 없었을 것입니다.
몸은 무거웠지만 사람들과 밥을 나누며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회복 38일차.
오늘은 많이 걷지도 않았고 푸놀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몸이 허락하는 만큼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산책길 끝에서 이웃을 만나 아침을 함께 먹고, 점심에는 제가 국수를 만들어 나누었습니다.
몸이 완전히 좋아지는 것만이 회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밥 한 끼를 함께 먹으며 평범한 일상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것도 회복의 한 과정일 것입니다.
오늘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맛과 사람 사이에 남아 있는 따뜻한 정을 다시 느낀 하루였습니다.
사람들과 밥 한 끼를 나누며
일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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