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채와 신나게 놀다가 제가 집에 갈 시간이라고 말하면 채채의 표정은 금세 울상이 됩니다.
아직 울기도 전인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로 저를 바라봅니다.
“채채야, 이제 할머니랑 안녕해야지.”
“할머니 보고 싶을 것 같아.”
아직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할머니를 그리워할 것 같다는 채채의 말을 들으면 저도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채채에게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은 즐거웠고, 그 시간이 끝나는 것이 많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홍이와 예예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할머니와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일까요?
- 할머니는 부모와 다른 편안함을 주는 또 한 명의 어른입니다.
- 크게 우는 아이뿐 아니라 조용히 참는 아이의 마음도 살펴야 합니다.
- 아이의 편이 되는 것과 모든 요구를 허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부모와는 조금 다른 편안함
부모는 아이의 일상을 책임져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을 먹이고 씻기며 잠을 재워야 합니다.
위험한 행동을 막고 생활습관과 규칙도 가르쳐야 하므로 아이의 요구를 매번 충분히 기다려주기는 어렵습니다.
할머니도 아이를 돌보고 기준을 알려주지만 부모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일상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한 번 더 들어주고 같은 놀이를 조금 더 오래 지켜볼 여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또 다른 편안함과 정서적 안정감을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와는 다른 자리에서 아이를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사람
아이들은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고 같은 놀이를 반복합니다. 어른은 “조금 전에 말해줬잖아”라고 답하거나 아이의 행동을 빨리 고쳐주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과 행동에는 어른이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마음이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라고 해서 아이의 마음을 언제나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실수하고, 아이의 표정을 다시 살피며 자신의 반응을 바꾸어갑니다.
채채가 같은 질문을 계속할 때면 저도 채채의 말을 따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채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할머니는 왜 나를 따라 해?”
제가 “할머니가 채채 말을 따라 하니까 채채는 어때?”라고 물으면 채채는 멋쩍게 웃은 뒤 다른 장난을 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린 것인지, 할머니의 반응이 불편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 아이의 표정 하나를 어른의 생각으로 너무 빨리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배웁니다.
크게 우는 아이와 조용히 참는 아이
홍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언니의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고 엄마에게 더 많이 안아달라고 합니다.
걸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말합니다.
“나는 아기라서 다리가 아파.”
“잘 못 걸어가.”
“엄마, 안아줘.”
그런 홍이를 보며 채채는 의연하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언니라서 홍이처럼 고집부리지 않아.”
그리고 혼자 걸어갑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입니다.
채채가 정말 괜찮아서 걷는 것인지, 언니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홍이는 크게 표현하므로 마음을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반면 채채는 언니답게 행동하려고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안기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걸어야 해.”
채채에게는
“언니여도 안아달라고 말해도 괜찮아.”
할머니의 역할은 더 크게 우는 아이의 요구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참고 있는 아이의 마음까지 함께 살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편이 되는 것과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할머니는 손주가 예쁘고 안쓰러워 원하는 것을 쉽게 들어주고 싶어집니다. 부모가 안 된다고 한 일도 한 번쯤은 허락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아이의 편이 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면서 지켜야 할 기준도 알려주는 것입니다.
- “더 가지고 놀고 싶구나. 하지만 지금은 언니 차례야.”
- “안아달라는 마음은 알지만 계속 안고 갈 수는 없어.”
- “속상해서 울 수는 있지만 때리거나 던질 수는 없어.”
감정을 받아주고 행동의 경계를 알려줄 때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안정감과 함께 다른 사람의 마음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할머니가 부모와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아이는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안전과 기본적인 생활 규칙은 부모와 방향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
할머니는 아이의 마음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딸의 어려움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홍이가 계속 안아달라고 하고 자신을 먼저 챙겨달라고 하면 엄마는 몸도 마음도 지칩니다.
그때 “아이가 원하는데 조금 더 안아주지”라고 쉽게 말하면 엄마가 감당하고 있는 힘듦을 놓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듯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도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할머니가 잠시 아이와 놀아주거나 두 아이 중 한 명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많이 힘들었지?”
“한 아이는 할머니가 보고 있을 테니 잠깐 쉬어.”
할머니는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 사이에 조금 더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할머니의 말과 가족 이야기도 아이에게 남습니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부모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는지,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 “엄마도 어렸을 때는 채채처럼 울었어.”
- “엄마도 할머니에게 안아달라고 했단다.”
- “엄마도 동생과 장난감을 가지고 다툴 때가 있었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는 엄마도 처음부터 어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모습이 가족의 시간 속에 이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는 할머니가 자주 사용하는 말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따라 합니다. 할머니가 실수한 뒤 “방금 말은 좋지 않았어. 다시 말해볼게”라고 고쳐 말하는 모습도 아이에게는 중요한 배움이 됩니다.
함께 놀아준 시간은 마음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할머니와 함께한 특별한 여행이나 선물도 좋은 기억이 됩니다. 하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평범하게 함께 보낸 시간일 수 있습니다.
같은 그림책을 읽고, 장난감을 정리하고,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아이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들어주는 시간입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해.
할머니는 내가 어떤 마음이어도 곁에 있어.
이런 경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가 성장한 뒤에도 관계를 믿는 힘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헤어짐을 통해 다시 만남을 배웁니다
채채는 할머니가 집에 간다고 하면 금세 울상이 됩니다. “할머니 보고 싶을 것 같아”라고 말하며 울기도 합니다.
저는 채채의 눈물을 빨리 멈추게 하기보다 그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싶습니다.
- “할머니와 헤어져서 아쉽구나.”
- “할머니도 채채가 보고 싶을 거야.”
- “오늘은 안녕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어.”
할머니와 헤어지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잠시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날 수 있고,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아이와 함께 할머니도 성장합니다
채채와 홍이, 예예를 만나면서 저는 상담실에서 배운 이론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의 생생한 마음을 다시 만납니다.
크게 울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언니의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며, 안아달라고 조르는 행동 안에는 저마다 다른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을 모두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한 번 더 바라보며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지금 어떤 마음이야?”
“할머니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속상한 마음을 말해줄래?”
아이에게 할머니는 무엇이든 들어주는 사람보다 자신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도 채채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한 시간이 그만큼 따뜻했다는 뜻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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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1. 할머니가 손주의 요구를 많이 들어주면 버릇이 나빠질까요?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과 모든 요구를 허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이의 감정은 공감해주되 안전과 생활 규칙,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기준은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Q2. 할머니와 부모의 훈육 방법이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부적인 반응은 다를 수 있지만 안전과 수면, 식사, 장난감 사용처럼 중요한 생활 기준은 부모와 미리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 앞에서 서로의 양육 방법을 비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Q3. 할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우는 아이는 괜찮을까요?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울음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울지 마”라고 막기보다 슬픈 마음을 인정하고 다시 만날 시점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알려주세요.
※ 아이의 행동과 감정 표현에는 연령과 기질에 따른 개인차가 있습니다. 특정 행동 하나만으로 아이의 성격이나 발달을 단정하기보다 평소의 관계와 생활 모습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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